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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16 [새벽묵상] 우상의 단을 헐라 | Tear down the Altar of Idol (삿/jDG 6:25~32)



25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26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

27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28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찌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31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찐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32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한국에서 한 당황스런 사건이 90년대 후반에 일어났습니다. 97-99년 사이 단군을 숭배하는 단체에 의해 전국 초중교에 369개의 단군상 설치되었는데, 2006년까지 70여기의 단군상이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누가 그랬을까요? 아마도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드온의 후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한 일이 잘한 것인가요? 잘못한 것인가요?

적어도 오늘 본문을 근본주의적으로 해석하면 단군상을 파괴한 행위는 잘한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헌법에 의해 통치되는 현대국가에서는 분명히 공공기물을 파손하는 범법적 행위일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옳지만, 지금은 틀린 행위인 본문의 우상 파괴 행위를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해석하고 삶에 적용하여 순종해야 할까요?


1. 우상을 파괴하라

우상숭배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는 우상에 대한 정의부터 필요합니다.

우상(偶像)은 이돌라(idola) 또는 편견이라고도 하며, 인간이 올바른 지식을 얻을 때에 방해가 되는 편견(편중된 견해), 그릇되어 있는 선입관을 말합니다.

영국의 17C 철학자이자 경험론의 비조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그의 우상론에서 다음과 같은 4가지 우상론을 제시합니다. 종족의 우상(인간의 입장), 동굴의 우상(자신의 경험), 시장의 우상(타인의 말만 믿는), 극장의 우상(전통을 그냥)입니다.



결국 신앙적인 개념에서는 본질이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잃고 눈에 보이는 형상을 섬기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 우상이라 함은 눈에 보이는 단군상을 섬기는 것도 우상숭배지만, 사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인 무형의 우상도 있습니다.

내가 추구하는 그 무엇인가가 얼마든지 나의 우상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같은 경우는 기독교 신앙이라는 전통 안에서 그냥 해오던 것을 숭배하는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비본질 적인 부분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말씀에 입각한 개혁주의 신앙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무조건 기독교 전통을 무시하거나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기준이 되는 말씀에 입각하여 검증을 받고, 잘못된 부분은 개혁하여 끊임없이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이 말씀하는 바와 다르면 몇 천 년을 해 온 전통이라고 해도 버리는 것이 바로 우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1세기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입니다.기드온은 하나님의 명령을 실행하는 것을 두려워 했습니다(27). 사실 나중에 우상을 파괴한 기드온을 죽이려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30)을 볼 때 기드온의 두려움은 근거 있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수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길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은 외롭고 두려운 일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기드온이 얼마나 두려웠으면 낮에는 못하고 밤에 그일을 했겠습니까? 하지만 밤에라도 행해야 하는 것이 우상파괴입니다. 너무 두려워 마십시오. 임마누엘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생각지도 않았던 아버지 요아스의 지혜로운 말을 통하여 그를 보호(31)하셨습니다.

21세기에 우상을 파괴하기 위해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예배의 회복, 곧 삶의 회복입니다.

기드온 규례대로 단을 쌓았습니다(26). 규례대로 라는 말의 의미는 말씀대로, 정성껏 단을 쌓았다는 의미입니다. 나는 예배를 어떻게 준비하나요? 어떻게 예배하고 있습니까? 예배는 준비와 기대감(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예배의 회복은 삶의 예배의 회복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예배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평가합니다. 삶을 통해서 세상 가운데 만연한 우상들을 파괴하십시오!



2. 가치판단에 대한 우선순위 정립

마지막으로 21세기 우상파괴를 위해 필요한 것은 가치판단에 대한 우선순위 정립입니다.

어떤 가치를 판단할 때 내안에 가지고 있는 기준을 말하는데 그것이 명확한 순서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문에서 마을 사람들은 기드온을 죽이려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적어도 그의 목숨보다는 바알 신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정말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그토록 사랑했을까요?

아닙니다. 그들이 바알과 아세라를 사랑한 이유는 농경의 신, 바람과 비를 주관하는 바알과 아세라를 화나지 않게 하여 농사가 잘 되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결국 농사와 관련된 먹고 사는 문제가 바로 그들의 바알숭배의 동인, 즉 동기부여인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신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자신이 잘먹고 잘사는 문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한 차원에서 기드온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의 목숨보다 자신들의 먹고 사는 문제에 더욱 가치를 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사실은 돈, 물질, 쾌락을 섬기는 것입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 우상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요?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만일 우리가 나의 무언가를 위해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주고 받고를 떠나서 아버지는 아버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읍사람들은 기드온을 죽이려고 하는데 진짜 죽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바로 우상숭배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세상사람들은 우리를 비웃고 조롱합니다.

물론 우리의 삶의 예배에 문제가 있습니다. 말씀대로 잘 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구도가 영적인 전쟁을 할 수 밖에 없는 구도입니다.

또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기드온, 그리고 우리들 역시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높은 산 꼭대기에 드려진 제물은 원래 기드온이어야 합니다. 우리여야 합니다.

하지만 샬롬의 하나님이 그에게 생명을 약속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을 약속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날마다 거룩한 산제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어려운 상황이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든 우상들이 태워질 것입니다.


 

25 That same night the Lord said to him, “Take the second bull from your father’s herd, the one seven years old. Tear down your father’s altar to Baal and cut down the Asherah pole beside it. 26 Then build a proper kind of altar to the Lord your God on the top of this height. Using the wood of the Asherah pole that you cut down, offer the second bull as a burnt offering.”


27 So Gideon took ten of his servants and did as the Lord told him. But because he was afraid of his family and the townspeople, he did it at night rather than in the daytime.


28 In the morning when the people of the town got up, there was Baal’s altar, demolished, with the Asherah pole beside it cut down and the second bull sacrificed on the newly built altar!


29 They asked each other, “Who did this?”


When they carefully investigated, they were told, “Gideon son of Joash did it.”


30 The people of the town demanded of Joash, “Bring out your son. He must die, because he has broken down Baal’s altar and cut down the Asherah pole beside it.”


31 But Joash replied to the hostile crowd around him, “Are you going to plead Baal’s cause? Are you trying to save him? Whoever fights for him shall be put to death by morning! If Baal really is a god, he can defend himself when someone breaks down his altar.” 32 So because Gideon broke down Baal’s altar, they gave him the name Jerub-Baal that day, saying, “Let Baal contend with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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