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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1 [새벽묵상] 감찰하시는 하나님 | God who watches (시/Ps 10:1~18)



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2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하오니 그들이 자기가 베푼 죄에 빠지게 하소서

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4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 하나이다

5 그의 길은 언제든지 견고하고 주의 심판은 높아서 그에게 미치지 못하오니 그는 그의 모든 대적들을 멸시하며

6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나는 흔들리지 아니하며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다

7 그의 입에는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하며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

8 그가 마을 구석진 곳에 앉으며 그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며 그의 눈은 가련한 자를 엿보나이다

9 사자가 자기의 굴에 엎드림 같이 그가 은밀한 곳에 엎드려 가련한 자를 잡으려고 기다리며 자기 그물을 끌어당겨 가련한 자를 잡나이다

10 그가 구푸려 엎드리니 그의 포악으로 말미암아 가련한 자들이 넘어지나이다

11 그가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의 얼굴을 가리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

12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들을 잊지 마옵소서

13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하지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14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주는 재앙과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 주는 벌써부터 고아를 도우시는 이시니이다

15 악인의 팔을 꺾으소서 악한 자의 악을 더 이상 찾아낼 수 없을 때까지 찾으소서

16 여호와께서는 영원무궁하도록 왕이시니 이방 나라들이 주의 땅에서 멸망하였나이다

17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사오니 그들의 마음을 준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18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사 세상에 속한 자가 다시는 위협하지 못하게 하시리이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공통적으로 겪는 것은 고통의 문제입니다.

고통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합니다. 만일 신이 있다면 그는 전능하고 선한 존재인데 어찌 인간에게 고통을 허용하는가? 는 의문입니다. 이것은 기원전 300여년 경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에피쿠로스에 의해 제기된 문제입니다. 소위 에피쿠로스의 역설 이라고 불리는 그의 주장은 신은 전능하며 신은 선한데 악은 존재한다 는 삼도논법(trilemma, 3자 택일의 궁지)으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악을 없애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신은 전능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할 수 있지만 하지 않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능력도 있고 없애려 하기도 하는가? 그렇다면 악이 어떻게 있을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는 능력도 없고 없애려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이러한 철학적, 신학적 질문에 대한 신학적인 답변이 소위 신학에서 말하는 신정론 神正論, Theodicy 곧, 신의 정당함을 변론하는 이론입니다. 신정론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성 어거스틴, A.D. 354-430)에 의해서 처음 세워진 신학이론입니다.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악의 문제는 하나님의 잘못이 아닌 인간의 자유의지와 범죄의 산물입니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건물을 철거하는 중에 건물이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무너져 내려 지나가던 버스를 덮치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신의 잘못이 아닌 공사를 하는 업체가 하청에 하청을 주면서 벌어진 인간의 잘못에 의한 사고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건보다 좀 더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쓰나미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로 인한 사건입니다. 물론 인간이 지구를 더 돌보지 못해서 벌어지는 자연재해도 있지만, 쓰나미와 같은 경우에는 자연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입니다. 이에 대한 신학적인 답변을 굳이 하자면 아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자연세계까지도 저주 받은 사건(창 3:17)을 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답변은 악의 문제 역시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하거나 답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만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악까지도 주관 하시는 주권자라는 사실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인간 세계의 대부분의 악은 우리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시편 10편이 바로 우리 세계에 존재하는 악인들에 대한 탄원의 시입니다. 다윗은 세상 가운데 악인들이 활보하는 모습을 보며 고통을 느꼈습니다. 일반적인 선량한 시민들도 동일한 마음일 것입니다.


시인의 탄식과 악인의 특징

시인은 악한 자가 교만하여 가련한 자를 심히 압박(2a)하는 현실을 보며 탄식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시인은 여호와께서 마치 멀리 서서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또는 숨바꼭질 하듯 숨은 것처럼 느껴(1)집니다. 인생의 고통 중에서 우리는 시인과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시인은 악인의 특징을 열거합니다.



그들은 교만합니다. 탐욕과 마음의 욕심이 가득하여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3)합니다.

그들은 교만한 얼굴로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않는다 하며,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4)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하는 일이 잘 되고, 하나님은 너무 고상한 분이라서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므로 하나님의 심판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신은 대대로 환난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6)합니다.

또한 그들은 입에 저주와 거짓과 포악이 충만합니다. 그의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습니다(7).

현대인들의 언어 생활을 보면 너무 보기 흉합니다. 거짓말, 남의 말, 험담, 욕설 등등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어 생활도 악인들과는 달라야 합니다.

악인들은 은밀한 곳에서 무죄한 자를 죽이고 가련한 자(압제 당하는 자)를 엿보고 있습니다(8).

그렇게 엿보는 이유는 가련한 자를 잡아 넘어뜨리려는 것(9, 10)입니다. 자신의 유익과 즐거움을 위해 악인들은 가련한 자를 압제하고 괴롭힙니다. 그러면서 마음속에서부터 하나님이 가련한 자를 잊으셨고, 얼굴을 가리셨으므로 영원히 보지 않을 것이라고 말(11)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있으나 마나 라고 멸시하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자들을 가만 놔두시는가?

시인은 여호와께 탄원(12)합니다. 시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가난한 자를 기억해주시는 분입니다.



또한 주께서는 악인과 의인을, 또한 온 세상을 감찰(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아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십니다.

시인은 내가 아는 하나님은 이러한 분이시니 악한 자의 팔을 꺾으시고, 악한 자의 악을 끝까지 찾아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영원토록 왕이시니 악한 자들의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고아와 압제 당하는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어 다시는 세상에 속한 자가 위협하지 못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세상에 속한 자라는 표현은 땅으로부터 온 인생 이라는 의미로 시편 9:19, 20절에 나온 인생(에노쉬)와 같은 유한하고 보잘것없는 존재에 대한 표현입니다. 악인들 스스로 자신이 그렇게 초라한 존재인 것을 알게 해달라는 요청으로 기도를 마칩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악한 자들을 내버려 두는 것일까요?

먼저 에피쿠로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는 악이 무엇인지를 모르기에 그러한 논지를 펼쳤습니다. 만일 절대 선이신 하나님이 악을 지금 당장 심판하시면 바로 에피쿠로스부터 죽어야 할 것입니다. 악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내어버려 두심 때문입니다. 내어 버려 두심을 다른 말로 하면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악을 바로 바로 심판하시면 우리 역시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인생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지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고, 그것을 믿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악을 선하신 일을 이루시기 위하여 잠시나마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듣고 보고 계시는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귀를 지으신 이가 듣지 아니하시랴 눈을 만드신 이가 보지 아니하시랴 (시 94:9)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12절을 외우면서 믿음으로 기도합시다!


 

1 Why, Lord, do you stand far off?

Why do you hide yourself in times of trouble?


2 In his arrogance the wicked man hunts down the weak,

who are caught in the schemes he devises.

3 He boasts about the cravings of his heart;

he blesses the greedy and reviles the Lord.

4 In his pride the wicked man does not seek him;

in all his thoughts there is no room for God.

5 His ways are always prosperous;

your laws are rejected by him;

he sneers at all his enemies.

6 He says to himself, “Nothing will ever shake me.”

He swears, “No one will ever do me harm.”


7 His mouth is full of lies and threats;

trouble and evil are under his tongue.

8 He lies in wait near the villages;

from ambush he murders the innocent.

His eyes watch in secret for his victims;

9 like a lion in cover he lies in wait.

He lies in wait to catch the helpless;

he catches the helpless and drags them off in his net.

10 His victims are crushed, they collapse;

they fall under his strength.

11 He says to himself, “God will never notice;

he covers his face and never sees.”


12 Arise, Lord! Lift up your hand, O God.

Do not forget the helpless.

13 Why does the wicked man revile God?

Why does he say to himself,

“He won’t call me to account”?

14 But you, God, see the trouble of the afflicted;

you consider their grief and take it in hand.

The victims commit themselves to you;

you are the helper of the fatherless.

15 Break the arm of the wicked man;

call the evildoer to account for his wickedness

that would not otherwise be found out.


16 The Lord is King for ever and ever;

the nations will perish from his land.

17 You, Lord, hear the desire of the afflicted;

you encourage them, and you listen to their cry,

18 defending the fatherless and the oppressed,

so that mere earthly mortals

will never again strike t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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