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너희는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행사를 백성 중에 선포할지어다
12 피 흘림을 심문하시는 이가 그들을 기억하심이여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도다
13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나를 사망의 문에서 일으키시는 주여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나의 고통을 보소서
14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찬송을 다 전할 것이요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15 이방 나라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짐이여 자기가 숨긴 그물에 자기 발이 걸렸도다
16 여호와께서 자기를 알게 하사 심판을 행하셨음이여 악인은 자기가 손으로 행한 일에 스스로 얽혔도다 (힉가욘, 셀라)
17 악인들이 스올로 돌아감이여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이방 나라들이 그리하리로다
18 궁핍한 자가 항상 잊어버림을 당하지 아니함이여 가난한 자들이 영원히 실망하지 아니하리로다
19 여호와여 일어나사 인생으로 승리를 얻지 못하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주 앞에서 심판을 받게 하소서
20 여호와여 그들을 두렵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이 자기는 인생일 뿐인 줄 알게 하소서 (셀라)
시편 9편의 표제는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뭇라벤에 맞춘 노래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알 뭇랍벤 על מות לבן 으로 라벤의 죽음에 대하여 라는 의미입니다.
칼빈은 이 시에 대하여 다윗의 대적 중에 영향력 있었던 사람이 라벤이었으며, 본 시는 그에 죽음(심판)에 대한 시라고 말했습니다. 한편 랍비들은 라벤을 사무엘상 25장에 등장하는 아비가일의 원래 남편인 나발로 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시편 9편은 대적의 심판에 대한 찬양의 시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두 가지 주제를 노래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 곧 악인에 대한 심판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6연 가난한 자를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ז 자인 11~12절)
시인은 시온에 계신 여호와를 찬송하라(11a)고 요청합니다. 시온성은 다윗이 여부스 족속에게서 빼앗은 성을 말합니다.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7년 6개월을 통치한 다윗은 난공불락 시온성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곳을 점령하려 합니다. 시온성에 살고 있던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에게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소경과 절뚝발이라도 너를 물리치리라(삼하 5:6b)라고 말하며 조롱합니다. 그러자 다윗은 수로를 통해서 그곳을 기습할 것을 명령하고, 기습작전은 성공합니다. 성을 빼앗은 다윗은 그곳을 다윗 성이라 명하게 됩니다. 바로 이곳이 하나님이 계시는 시온성이고 예루살렘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왕권과 그의 다스림(11b)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또한 인간은 피 흘림을 심문 하시는 하나님(12a)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항상 누군가의 피를 흘린 자는 보복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고기를 먹을 것을 허락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피를 먹는 것에 제한을 둡니다.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창 9:4~5)
생명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생명의 근원인 피를 흘린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억울하게 피해를 본 자나,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것(12b)입니다.
7연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ח 헤트, 13~14절)
이제 찬송이 기도로 전환됩니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대적을 물리쳐 주시는 기이한 은혜를 체험(1)했지만, 여전히 아직 남은 대적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간절하게 사망의 문에서 일으켜 주실 것과 미워하는 자에게서 받는 고통을 보아 달라(13)고 간구합니다. 대적들의 공격은 마치 사망으로 들어가는 문과 같습니다. 사망의 문은 하나님을 찬양할 수도, 섬길 수도 없는 죽음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14절의 시온의 문과 대조되는 단어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저승이 어찌 당신을 기리며 죽음이 어찌 당신을 찬미하겠습니까?
땅 속에 들어간 자들이 어찌 당신의 성실하심이 나타나기를 바라겠습니까? (사 38:18, 공동번역)
시인은 주님이 자신을 구원해주실 때 그것을 기뻐하고, 주의 행하신 일을 전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딸 시온의 문에서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14b)는 표현은 딸처럼 아끼시는 예루살렘 문에서 주님이 베푸신 구원을 찬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8연 악인의 운명 (ט 테트, 15~17)
악인의 운명을 시인 몇 가지 비유를 통하여 선포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판 웅덩이에 빠지고, 자기가 숨긴 그물에 걸릴 것(15)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계시적으로 악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자업자득(16)으로 스올로 돌아갈 것이며, 하나님을 잊어버린 모든 존재는 같은 운명(17)입니다.
힉가욘(16c)은 음악적 용어로 묵상하다, 슬퍼하다, 탄식하다 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으로 봅니다.
9연 의의 심판 (כ 카프, 18~29절)
악인과 대조되는 자들이 궁핍한 자, 가난한 자(18)입니다. 이들은 단순히 가난한 자라기 보다는 악인들에게 당하는 의인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께서 말씀 하신 복 있는 사람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릴 복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며, 돌보시는 은혜입니다.
이제 의로운 재판관이신 여호와께서 의의 재판을 위하여 일어나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교만한 인생은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인생은 אנוש 에노쉬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을 의미합니다. 악인들은 여호와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며, 본인들이 한낱 먼지와 같은 유한한 인생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도가 현재의 어려움 가운데에도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심판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지금은 억울하고, 지금은 분하지만, 곧 있으면 대적의 심판과 멸망을 볼 수 있다면 그것이 힘을 낼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시편 9편이 힘있는 찬양시가 될 수 있는 것도 무대 중앙에 계신 하나님이 주변의 악당들을 물리치는 통쾌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묵상은, 어려움 자체를 묵상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성품을 묵상하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결국에는 반드시 나의 어려움과 억울함을 풀어주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이것이 다윗의 믿음이었습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모든 겸손은 그 자신에 대한 지식에 있다 고 말했습니다.
칼빈은 인간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자신을 알 수 없다(기독교강요) 말했습니다.
20절의 노래가 이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인생은 결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멸망이 임하기 전에는 모릅니다. 마지막 날에야 비로소 어리석은 인간들은 깨달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심판주요, 또한 구속주 되신 예수님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드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요?!
11 Sing the praises of the Lord, enthroned in Zion;
proclaim among the nations what he has done.
12 For he who avenges blood remembers;
he does not ignore the cries of the afflicted.
13 Lord, see how my enemies persecute me!
Have mercy and lift me up from the gates of death,
14 that I may declare your praises
in the gates of Daughter Zion,
and there rejoice in your salvation.
15 The nations have fallen into the pit they have dug;
their feet are caught in the net they have hidden.
16 The Lord is known by his acts of justice;
the wicked are ensnared by the work of their hands.
17 The wicked go down to the realm of the dead,
all the nations that forget God.
18 But God will never forget the needy;
the hope of the afflicted will never perish.
19 Arise, Lord, do not let mortals triumph;
let the nations be judged in your presence.
20 Strike them with terror, Lord;
let the nations know they are only mor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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