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2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3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4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5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본 시는 개인 탄원시로 분류합니다. 일반적인 탄원시와 다른 점은 탄원이 아닌 기도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시편3편과 동일한 운율적 특징이나 음악적 용어 사용, 표현들로 말미암아 시편 3편은 아침기도로 4편은 이스라엘의 공식 예배 시 저녁기도(8절)로 사용되었습니다.
본 시의 배경에 대해서 혹자는 다윗의 사울에게 쫓기던 시절(삼상 20-24장)에 지은 시라고 주장하지만, 일반적으로 위에서 설명한 특징들을 근거로 한 보수신학자들의 견해대로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하여 도망자 신세가 된 때에 지은 시로 봅니다.
1연 (1절)
다윗은 내 의의 하나님(1a)에게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입니다. 의로운 재판관이신 하나님께 의의 판단을 맡깁니다. 여기에는 다윗의 결백이 녹아 있습니다.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곤난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1b)에서 곤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차르 צר인데, 이것은 좁은 해협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좁다는 것은 고난이나 핍박을 의미합니다. 시편23:4절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이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한편 너그럽게 하셨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히르하베트 הרחבת 인데, 이것은넓게하셨다, 여지를 만들어주셨다 는의미로 고난과 반대되는 개념입니다. 이처럼 다윗이 고백하는 의의 하나님은 나의 억울한 좁은 길을 넓히시고, 여유를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약 5:16) 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모두 의인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처럼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날줄로 믿습니다.
2연 (2~5절)
다윗은 2연에서 자신의 대적자들을 인생들아(2a)라고 부르며 권면합니다. 인생들아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베네 이쉬 אישבני 인데, 사람들의 아들 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지위가 높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애굽과 바벨론의 지주들을 이렇게 부르기도 했습니다.
만일 본 시가 압살롬의 반역 시기에 쓰여진 것이 맞다면, 본문에서 인생들은 압살롬을 도와 다윗에게 반역한 모든 고위층 인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다윗은 어느 때까지 하나님이 세운 다윗의 왕위를 찬탈하고, 헛된 일인 반역을 좋아하고, 거짓으로 다윗 왕을 모략하겠느냐고 강력하게 책망(2b)합니다.
다윗은 먼저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것을 알라(3a)고 권면합니다.
여기서 경건한 자(3a)는 자애로운 자, 충성스러운 자라는 의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말합니다. 다윗은 스스로 왕이 되거나, 백성들의 투표에 의해 왕이 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시고, 기뻐하시며 세우신 왕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자, 곧 경건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들으실 것(3b)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4a)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떨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가즈 רגז의 의미는 분노하다 입니다. 그러므로 본 구절은 너희는 분노함으로 떨 수는 있지만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 범죄하지 말라 라고 제대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본 구절을 인용하여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엡 4:26a) 라고 말한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분노를 가감 없이 표출하다 보면 분명히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분노와 불평, 불만은 그저 마음 속으로 생각하고, 입 밖으로는 분노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의의 제사를 여호와께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 것(5절)을 권면합니다.
의의 제사란 여호와께서 원하시고, 받으시는 상한 심령의 제사(시 51:17)이고, 또한 성령과 진리로 하는 예배(요 4:24)입니다. 이것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예배가 의의 제사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 기도, 찬양 등 모든 영적인 행위는 예수를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은 대적자들이 회개하며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종용합니다.
3연 (6~8절)
다윗은 회의론자들의 탄식하는 말인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6a)를 인용합니다. 그들은 절망적인 상황만 보며 탄식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현세대를 보며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질문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순간 회의적인 생각과 절망적인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곧이어 주의 얼굴을 구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순간 지치고, 절망하지만 이내 살아계신 여호와의 얼굴(은혜, 도움)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살아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것은 대제사장인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할 때 사용하는 구문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민 6:24~26)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마음에 두신 기쁨은 대적자들이 누리고 추구하는 세상적인 부와 풍성함과 비교할 수 없는 기쁨임을 노래(7)합니다. 그 기쁨으로 말미암아 다윗은 평안히 눕고 잘 수 있습니다.
그의 소망은 자신을 안전히 살게 하시는 오직 여호와께 있습니다!
우리는 곡식이 창고에 가득하고, 새포도주가 풍성할 때 기쁨을 누립니다. 자연스런 인간의 본성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는 그보다 훨씬 더 깊고, 풍성하고, 근원적인 기쁨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기쁨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풍성한 통장의 잔고와 좋은 명품들, 넓고 큰 집과 자동차입니까?
아니면 내게 얼굴 빛을 비춰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시는 기쁨입니까?
여호와의 얼굴 빛으로 말미암아 오늘 저녁에도 두 다리 뻗고 평안히 주무시는 성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For the director of music. With stringed instruments. A psalm of David.
1 Answer me when I call to you,
my righteous God.
Give me relief from my distress;
have mercy on me and hear my prayer.
2 How long will you people turn my glory into shame?
How long will you love delusions and seek false gods?
3 Know that the Lord has set apart his faithful servant for himself;
the Lord hears when I call to him.
4 Tremble and do not sin;
when you are on your beds,
search your hearts and be silent.
5 Offer the sacrifices of the righteous
and trust in the Lord.
6 Many, Lord, are asking, “Who will bring us prosperity?”
Let the light of your face shine on us.
7 Fill my heart with joy
when their grain and new wine abound.
8 In peace I will lie down and sleep,
for you alone, Lord,
make me dwell in saf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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