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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11 새벽묵상 "진리와 사랑 실천편" "Implementing Truth & Love" (요삼/3Jhn 1:1-15)



(1)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3)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4)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5)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은 신실한 일이니 (6) 그들이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언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 (7)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8) 그러므로 우리가 이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11)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뵈옵지 못하였느니라 (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13)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14)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


(15)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요한삼서는 요한이서와 매우 흡사합니다. 파피루스 한 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서신으로, 기록연대 역시 요한일서, 요한이서와 동일한 A.D. 90-100년 사이로 보고 있습니다. 요한이서가 진리와 사랑에 대한 교과서적인 편지였다면, 요한삼서는 그 실천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1, 2서와 같은 사도 요한입니다. 제롬Jerome은 사도 요한과 본서의 장로(v.1)를 다른 사람으로 보았지만, 교부 오리겐Origen의 제자 디오니시우스Dionysius는 본서의 장로와 사도 요한을 같은 인물로 보았습니다.

본문을 살펴보면 사용하는 단어나 문체(진리, 5회 사용), 수신자에 대한 사랑하는 자라는 호칭(4회), 그리고 진리와 사랑에 관한 내용이 요한1, 2서와 일치합니다. 사실 본문을 읽어보면, 사도 요한이 저자임을 바로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본서는 2서와는 달리 완벽하게 가이오Gaius라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라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가이오는 3명이 있습니다. 먼저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Gaius from Macedonia (행 19:29), 다음은 더베 사람 가이오Gaius from Derbe (행 20:4), 마지막으로 고린도 사람 가이오Gaius from Corinth (롬 16:23; 고전 1:14)입니다. 그는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인물로 혹자들은 그가 본서의 수신자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하지만 4세기 경의 책 사도적 관행Apostolical Constitutions을 보면 요한 사도에 의해 더베의 가이오가 버가모의 첫 감독으로 임명됩니다. 그래서 혹자는 본서의 가이오가 더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본서의 등장하는 가이오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모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진리 안에 거하면서(v.3) 사랑을 실천하는 자였다는 사실입니다(v.6).


진리와 사랑의 실천의 본 (1-8절)

그래서 요한 사도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고 아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의(1a)에 해당하는 1인칭 대명사인 에고ἐγὼ (egō)는 일반적으로 생략되기 쉽지만, 본 절에서는 강조되어 사용되었습니다. 참으로(1b)는 엔 알레데이아ἐν ἀληθείᾳ (en alētheia)로 진리 안에서 라는 의미입니다. 첫 인사만으로도 사도가 얼마나 그를 사랑하고 아끼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사도는 진심 어린 인사말을 전합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는 반드시 먼저 영적인 것, 곧 그들의 영혼이 잘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범사입니다.

영혼이 잘 될 때, 범사가 잘 되는 것입니다. 영혼은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된 영적인 생명을 의미합니다.

잘되다좋은 길로 인도됨, 좋은 여행을 함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잘된다는 것은 선한 목자에게 이끌려 좋은 곳으로 인도 받는 것을 말합니다.

강건하다 는 누가의 경우 건강하고 튼튼한 사람에게 사용했고, 바울은 건전한 가르침에 사용한 단어입니다. 종합해보면 강건하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아주 튼튼하고 건강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순회전도자들이 전해준,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기뻐(3)합니다.

사실 성도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열심히 하는 것만큼 목회자에 힘이 되고 기쁜 일은 없을 것(4)입니다.

순회전도자들은 요한이 섬기는 에베소교회에서 공개적으로 가이오가 진리의 말씀에 입각한 신앙생활뿐

아니라 진실한 사랑에 입각하여 나그네 대접에 힘을 쏟고 있음을 증거(5-6)했습니다. 당시 전도자들이나 나그네를 대접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교회의 사역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도를 하면서 이방인 (불신자)들에게 어떤 대가도 받지 않았기에(5), 성도들이 그들을 돕지 않으면 전도 사역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들을 대접하는 것은 곧 함께 사역하는 것(8)이라고 말합니다.


반면교사, 끝 인사 (9-15절)

가이오와 같은 장로만 있다면 교회는 참으로 영광스럽고, 행복할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한사랑교회 장로님, 안수집사님, 권사님, 중직들은 모두 가이오와 같은 분들입니다. 한결같이 하나님과 성도를 사랑하는 분임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꼭 그런 분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교회에 디오드레베 장로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이오 와는 달리 교권주의에 사로잡혀 으뜸 되기를 좋아하고, 악한 말로 요한 사도와 그 일행을 비방하고, 순회전도자들도 문전박대 했으며, 심지어 그들을 맞이하려는 자들까지 교회에서 내쫓아 버렸습니다(9-10).

그러므로 사도는 디오드레베와 같은 악한 자를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한 자이고, 악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없기 때문(11)입니다.

선한 것에 본이 되는 사람이 본 서신을 들고 가이오에게 갑니다. 바로 데메드리오인데 그가 누구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는 뭇사람과 진리의 영과 사도에게 3중으로 인정을 받은 자(12)입니다.

사도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원문은 입과 입으로) 교제하기를 원하며, 평강을 빌며 마무리(13-15)합니다.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디오드레베가 어떻게 장로가 될 수 있었을까요? 만일 처음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과연 장로가 될 수 있었을까요?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분당우리교회 개척멤버로 참여하면서 이찬수 목사님과 함께 많은 고민과 토론, 회의, 컨설팅을 했습니다.

하루는 교회 이름을 정하는 날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개척하는 경우 담임목사가 기도한 후 교회 이름을 정하지만, 분당우리교회는 성도들이 함께 참여하여 투표로 정했습니다. 그렇게 정해진 것이 We가축 울타리의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우리 였습니다.

나중에 이찬수 목사님이 냈던 의견을 살펴 보았습니다. 초심(初心) 처음 마음, 초심교회라… 지금도 약간 촌스러운 느낌이지만(그래서 당시 개척멤버들이 선택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의미만큼은 아직까지도 울림이 있는 이름입니다. 차라리 처음마음교회 라고 했으면 좋았겠다 혼자 생각 해봅니다.

신앙생활도 목회도 결국 초심의 싸움인 것 같습니다.

디오드레베 장로가 처음부터 교만하고, 으뜸되기를 좋아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 사랑이 없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처음 마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이 편지를 쓰고 있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책망하십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 2:4, 5a)


초심, 하나님과 성도들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리기 전에 그것을 잘 간수하고, 자라나게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오늘도 선한 목자의 인도하심을 받아 영육간에 강건한 초심을 지키는 성도됩시다!



 


1 The elder,


To my dear friend Gaius, whom I love in the truth.


2 Dear friend, I pray that you may enjoy good health and that all may go well with you, even as your soul is getting along well. 3 It gave me great joy when some believers came and testified about your faithfulness to the truth, telling how you continue to walk in it. 4 I have no greater joy than to hear that my children are walking in the truth.


5 Dear friend, you are faithful in what you are doing for the brothers and sisters, even though they are strangers to you. 6 They have told the church about your love. Please send them on their way in a manner that honors God. 7 It was for the sake of the Name that they went out, receiving no help from the pagans. 8 We ought therefore to show hospitality to such people so that we may work together for the truth.


9 I wrote to the church, but Diotrephes, who loves to be first, will not welcome us. 10 So when I come, I will call attention to what he is doing, spreading malicious nonsense about us. Not satisfied with that, he even refuses to welcome other believers. He also stops those who want to do so and puts them out of the church.


11 Dear friend, do not imitate what is evil but what is good. Anyone who does what is good is from God. Anyone who does what is evil has not seen God. 12 Demetrius is well spoken of by everyone—and even by the truth itself. We also speak well of him, and you know that our testimony is true.


13 I have much to write you, but I do not want to do so with pen and ink. 14 I hope to see you soon, and we will talk face to face.


Peace to you. The friends here send their greetings. Greet the friends there by name.




1 commentaire


Yeong Chai
Yeong Chai
11 janv. 2021

진리 안에서 행하여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하기를 기도합니다. 한사랑 교회 성도 모두 서마나 교회처럼 죽도록 충성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받게 되기를 원합니다. 참고로 이슬람 국가인 터키,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일곱 교회중 유일하게 아직도 교회 (폴리캅 교회) 가 현존하는 곳이 서마나 교회가 있던 곳 입니다. 500년 이슬람 오스만 제국의 지배 아래 순교자들의 충성이 지켜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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