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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31 새벽묵상 "징벌 후에 찾아오는 회복" "Recovery After Punishment" (렘/Jer 52:24-34)



24 사령관이 대제사장 스라야와 부제사장 스바냐와 성전 문지기 세 사람을 사로잡고

25 또 성 안에서 사람을 사로잡았으니 곧 군사를 거느린 지휘관 한 사람과 또 성중에서 만난 왕의 내시 칠 명과 군인을 감독하는 군 지휘관의 서기관 하나와 성 안에서 만난 평민 육십 명이라

26 사령관 느부사라단은 그들을 사로잡아 리블라에 있는 바벨론의 왕에게 나아가매

27 바벨론의 왕이 하맛 땅 리블라에서 다 쳐 죽였더라 이와 같이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에서 떠났더라

28 느부갓네살이 사로잡아 간 백성은 이러하니라 제칠년에 유다인이 삼천이십삼 명이요

29 느부갓네살의 열여덟째 해에 예루살렘에서 사로잡아 간 자가 팔백삼십이 명이요

30 느부갓네살의 제이십삼년에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사로잡아 간 유다 사람이 칠백사십오 명이니 그 총수가 사천육백 명이더라

31 유다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 곧 바벨론의 에윌므로닥 왕의 즉위 원년 열두째 달 스물다섯째 날 그가 유다의 여호야긴 왕의 머리를 들어 주었고 감옥에서 풀어 주었더라

32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33 그 죄수의 의복을 갈아 입혔고 그의 평생 동안 항상 왕의 앞에서 먹게 하였으며

34 그가 날마다 쓸 것을 바벨론의 왕에게서 받는 정량이 있었고 죽는 날까지 곧 종신토록 받았더라



역사적 부록Historical Appendix or Historical Supplement 으로 불리는 예레미야 52장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서 전체의 마지막이기도 합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예레미야 52장을 기록한 후대의 편집자는 예레미야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철저한 징벌 (24-30절)

선지자의 예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완벽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는 철저한 징벌이라는 측면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던 다윗 왕가에 대한 심판, 빈 껍데기뿐인 성전에 대한 심판, 그리고 오늘 본문 부분인 제사장과 백성들에 대한 심판입니다.

24-27a절은 제사장과 왕의 신하들에 대한 심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 스라야는 요시야 왕 시절에 대제사장인 힐기야의 손자입니다. 그리고 스라야의 아들은 여호사닥이고, 여호사닥의 아들은 포로 귀환 때 스룹바벨과 성전 재건의 중심에 있었던 제사장 여호수아입니다.

살룸은 힐기야를 낳고 힐기야는 아사랴를 낳고 아사랴는 스라야를 낳고 스라야는 여호사닥을 낳았으며 여호와께서 느부갓네살의 손으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을 옮기실 때에 여호사닥도 가니라 (대상 6:14-15)

다리오 왕 제이년 여섯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로 말미암아 스알디엘의 아들 유다 총독 스룹바벨과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학 1:1)

제사장과 부제사장 및 성안에 있는 왕의 신하들과 평민까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사령관 느부사라단에 붙잡혀 리블라에 이릅니다. 그리고 바벨론 왕은 그곳에서 왕의 신하들과 제사장을 쳐 죽입니다.

예레미야를 괴롭혔던 신하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예언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제사장들은 예레미야에게 비교적 호의를 베풀었지만, 유다의 타락을 방치한 심판을 받습니다.

종교 지도자의 타락은 국가의 타락과 직결됩니다.

27b-30절 이제 유다가 사로잡혀 본국을 떠나 바벨론으로 이동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애굽으로 도망한 자들이 아닌 바벨론에 잡혀간 이들을 사용하여 예루살렘을 회복 시킬 것입니다.

가장 먼저 잡혀간 사람들은 B.C.605 여호야김 왕 시절 바벨론의 1차 침공 때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이때에 포로로 잡혀간 것입니다.

28절 느부갓네살 제칠년은 B.C.597년 2차 침공 때를 말합니다.

29절 느부갓네살 열여덟째 해는 B.C.586년 3차 침공,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의 때입니다.

30절 느부갓네살 제이십삼년은 B.C.581년으로 정확하게 무슨 사건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임시 총독이었던 그다랴를 장군이었던 유다왕족 이스마엘이 살해한 사건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합니다.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그와 함께 있던 열 사람이 일어나서 바벨론의 왕의 그 땅을 위임했던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칼로 쳐죽였고 (렘 41:2)

여하튼 3번의 걸친 포로이송은 총수가 4,600명에 달합니다. 생각보다 적은 숫자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남자의 숫자만으로 볼 때 어린이, 여자와 노인을 포함하면 2만 명에 달하는 숫자이고, 그들이 바벨론까지 걸어갔을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징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불순종한 백성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오는 회복의 신호탄 (31-34절)

유대 사람들은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보다는, B.C.597년 즉위한지 3개월 만에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여호야긴을 정통 왕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속히 여호야긴과 성전의 기구들이 돌아올 것을 원하며, 그렇게 되리라고 믿으려 했습니다. 이러한 심리를 이용하여 선지자 하나냐는 가짜 예언을 합니다.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렘 28:4)

하지만 본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여호야긴(여고니야)은 바벨론에서 37년 동안 옥살이를 했습니다.

그 후에 느부갓네살의 아들 에윌므로닥이 즉위하여 여호야긴을 석방한 후 다른 나라의 포로로 잡혀온 왕들보다 자리를 높이고, 의복을 갈아 입히고, 평생을 왕과 함께 식사하도록 그 명예를 회복 시켜줍니다.

여호야김은 매일 쓸 것을 왕으로부터 죽는 날까지 공급 받았습니다.

이는 에윌므로닥이 즉위한지 2년 만에 살해된 후, 이어서 왕위에 오른 네리글리살Nergal-Sharezer 때에도 여호야김에게 필요한 것들이 계속 공급 되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에윌므로닥Awel-Marduk의 본명은 아멜-마르둑Amel-Marduk으로 말둑의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에윌므로닥은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나중에 지어진 이름으로 어리석은 므로닥 이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그는 아버지 느부갓네살에 의해 잠시 감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여호야김과 친구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호야김이 바벨론으로부터 받은 이러한 호의는 신학적으로 중요한 두 번째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유다를 떠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회복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가문에 단비를 기다리던 엘리야가 바라본 손바닥 만한 구름이었고, 삼손의 잘린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유다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회복은 반드시 철저한 심판과 징벌, 그리고 회개 후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과 끝을 하나님의 은혜가 감싸고 있습니다.

전세계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속히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다시 머리카락이 자라는 은혜를 주시기를…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 (삿 16:22)



 

24 The commander of the guard took as prisoners Seraiah the chief priest, Zephaniah the priest next in rank and the three doorkeepers. 25 Of those still in the city, he took the officer in charge of the fighting men, and seven royal advisers. He also took the secretary who was chief officer in charge of conscripting the people of the land, sixty of whom were found in the city. 26 Nebuzaradan the commander took them all and brought them to the king of Babylon at Riblah. 27 There at Riblah, in the land of Hamath, the king had them executed.


So Judah went into captivity, away from her land. 28 This is the number of the people Nebuchadnezzar carried into exile: in the seventh year, 3,023 Jews;

29 in Nebuchadnezzar’s eighteenth year, 832 people from Jerusalem;

30 in his twenty-third year, 745 Jews taken into exile by Nebuzaradan the commander of the imperial guard. There were 4,600 people in all.


31 In the thirty-seventh year of the exile of Jehoiachin king of Judah, in the year Awel-Marduk became king of Babylon, on the twenty-fifth day of the twelfth month, he released Jehoiachin king of Judah and freed him from prison. 32 He spoke kindly to him and gave him a seat of honor higher than those of the other kings who were with him in Babylon. 33 So Jehoiachin put aside his prison clothes and for the rest of his life ate regularly at the king’s table. 34 Day by day the king of Babylon gave Jehoiachin a regular allowance as long as he lived, till the day of his death.



This is the last part of Jeremiah 52, called the Historical Appendix or Historical Supplement. And it is the end of the whole book of Jeremiah. The writer is not known, but the later editor of Jeremiah 52 wanted to let the reader know that Jeremiah's prophecy came true.


Thorough punishment (verses 24-30) The prophet's prophecy was fulfilled perfectly in two respects. The first is the aspect of thorough punishment.

It is a judgment on the royal family of David, who did not serve the LORD like David, a judgment on the empty shell of the temple, and judgment on the priests and people in today's scripture.

Verses 24-27a record judgments against priests and kings.

High Priest Seraiah is the grandson of Hilkiah, the high priest during the days of King Josiah. And Seraiah's son was Jehozadak, and Jehozadak's son was Jerubbabel and Joshua the priest who was at the center of the rebuilding of the temple when he returned from captive.


Shallum the father of Hilkiah, Hilkiah the father of Azariah, Azariah the father of Seraiah, and Seraiah the father of Jehozadak. Jehozadak was deported when the LORD sent Judah and Jerusalem into exile by the hand of Nebuchadnezzar. (1 Chronicles 6:14-15)


In the second year of King Darius, on the first day of the sixth month, the word of the LORD came through the prophet Haggai to Zerubbabel son of Shealtiel, governor of Judah, and to Joshua son of Jehozadak, the high priest: (Haggai 1:1)

Priests, deputy priests, the king's servants, commons , and all ranks in the city were captured by Nebusaradan, the commander, and reached Ribla. And there, the king of Babylon killed king’s servants and priests.

There might have been some king’s servants who had harassed Jeremiah. They were judged according to the prophecy.

The priests did relatively favorable to Jeremiah, but they were judged for neglecting Judah's corruption.

The corruption of religious leaders is directly connected with the corruption of the state.

Verses 27b-30 Judah is now captured, leaving his homeland and moving to Babylon. However, the LORD will restore Jerusalem using those captured in Babylon, not those who fled to Egypt.

The first to be captured was during the first Babylonian invasion during King Jehoiakim, B.C. 605.

It is not recorded in today's scripture. Daniel and his three friends were taken captive at this time.

Verse 28 The seventh year of Nebuchadnezzar refers to the second invasion in 597 B.C.

Verse 29 The eighteenth year of Nebuchadnezzar is the time of the third invasion in B.C. 586, the total destruction of Jerusalem.

Verse 30 Nebuchadnezzar's twenty-third year was B.C. 581, and it is not known exactly what happened. However, it is speculated that it may be related to the murder of Gedaliah, the interim governor, by Ishmael, a Judean royalty, who was a general.

Ishmael son of Nethaniah and the ten men who were with him got up and struck down Gedaliah son of Ahikam, the son of Shaphan, with the sword, killing the one whom the king of Babylon had appointed as governor over the land. (Jer. 41:2)


Any way, the total number of prisoners of war over three times reached 4,600. You might think it's a smaller number than you might think, but considering the number of men alone, including children, women, and the elderly, the number reached 20,000, and it must have been a time of tremendous suffering considering they walked to Babylon.

This is the way, God's punishment came against people who were completely disobedient, regardless of their position.


And the signal of the coming recovery (verses 31-34)

The Jews regarded Jehoiachin as an orthodox king, rather than Zedekiah, the last king of Judah, but Jehoiachin, who was captured by Babylon three months after his enthronment in 597 BC. So they wanted Jehoiachin and the temple's instruments to return soon, and they wanted to believe it would. Using this psychology, the prophet Hananiah made a false prophecy.


I will also bring back to this place Jehoiachin son of Jehoiakim king of Judah and all the other exiles from Judah who went to Babylon, declares the LORD, `for I will break the yoke of the king of Babylon." (Jer. 28:4)

However, as shown in the scripture, Jehoiachin (Jeconiah) spent 37 years in prison in Babylon.

After that, Nebuchadnezzar's son, Awel-Marduk was crowned and released Jehoiachin, raising his position over the kings who had been taken captive from other countries, changing his clothes, and restoring his honor to eat with the king for the rest of his life.

Jehoiakim received daily supplies from the king until his death.

This makes it possible to guess that Jehoiakim's needs continued to be supplied even when Awel-Marduk was murdered two years after he was enthroned, and then at the time of the Nergal-Sharezer ascending the throne.

Awel-Marduk's real name is Amel-Marduk, which means that he is a man of Malduk. It is not known what the reason for Awel-Marduk, but called stupid Marduk later.

According to Jewish transmission, he was temporarily imprisoned by his father Nebuchadnezzar, where he became friends with Jehoiakim.


This favor Jehoiakim received from Babylon gives a second message of theological importance. It was still evidence that God's concern and love did not leave Judah and was a sign of restoration.

It was a palm-sized cloud that Elijah, who was waiting for the rain during drought, and Samson's short hair that was grown again by the grace. The LORD will surely bring Judah back to Jerusalem.

Recovery must be given after thorough judgment, punishment, and repentance.

And God's grace covers the beginning and the end of all.

Pray that the whole world will be recovered quickly in the LORD’s grace.

Give us the grace of growing hair again...

The hair on his head began to grow again after it had been shaved. (Judges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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