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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01 새벽묵상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인가?" / "Where Should I Remain?" (렘/Jer 40:1-6)



(1)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 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 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 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 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



그토록 예레미야가 주장했던 미래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40~43장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이야기를 기록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석방이야기 입니다.

예루살렘 멸망의 신학적 의미 (1-3절)

바벨론의 총사령관인 느부사라단은 바벨론으로 잡아가는 포로의 무리 중에서 예레미야를 발견하고 그를 풀어줍니다. 언뜻 보면 앞선 39:11-14절 내용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는 않습니다. 39장의 내용이 전반적인 결과만을 기록한 것이라면,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의 석방과 관련한 상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레미야는 명령을 수행하는 병사들의 행정적인 착오로 인하여 포로 무리에 섞여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다행히도 총사령관이 이를 발견하고 그를 풀어주게 된 것입니다.

라마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mile(8km) 정도 떨어진 오늘날의 엘람er-Ram 이라는 곳입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를 잡아가는 중간에 모이는 집결지로서, 라헬의 묘실이 있어서 예레미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 때문에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어져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렘 31:15)

이 때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2-3절)은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신학적인 의미인데,

예레미야의 입이 아닌 이방인 총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입에서 나옵니다.

왜, 예루살렘은 멸망한 것일까? 어떻게 예루살렘이 멸망할 수 있을까? 모든 유대인들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 할 수 있는 이방인의 고백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신 것이다.

2) 여호와께 범죄하고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총사령관 느부사라단의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그는 이미 예레미야의 예언에 대해 알고 있었고, 모든 사건이 그의 예언대로 이루어졌음을 인정하는 것일 뿐입니다. 이에 대해서 최순진 수원신학교 구약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루살렘 멸망이 언약적 관점에서 설명되고 있다. 이 설명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아닌

이교도인 바빌론의 시위대장에 의해 예레미야에게 전해진 것은 기이Irony하다. 이 기이함을 통해 해설자는 예루살렘 멸망의 원인이 이교들에게조차 명백하게 이해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간혹 제삼자는 너무 명확하게 보이는 것을 당사자가 못 볼 경우가 있습니다. 유다가 그렇습니다.

너무 명확한 하나님이 하신 일과 자신들의 범죄를 여전히 알지 못하는 유다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필요한 것 중에 하나는 상황의 객관화입니다.

너무 주관적인 입장에서만 상황을 해석하다 보면 미처 제대로 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할 경우가 있습니다.

유다처럼 말입니다. 눈을 크게 뜨고, 한 발 물러나 상황을 보고 해석하십시오!

나를 향한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사명자가 있어야 할 곳 (4-6절)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를 풀어주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3가지 옵션을 줍니다.

첫째로는 느부사라단과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는 예레미야는 부와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선대하리라 는 히브리어 עיני את אשים (아심 에트 에니)로 직역하자면 내 눈으로 너를 주시하겠다 이고, 이는 높은 지위를 주어 잘 대접하겠다는 뜻입니다.

둘째로는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가는 것입니다. 다른 제삼국으로 망명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유다로 돌아가 총독인 그다랴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레미야는 유다로 돌아가는 것을 택합니다. 느부사라단은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냅니다.

그 동안 수고한 선지자에 대한 하나님의 작은 위로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레미야는 누릴 수 있는 부와 평안을 포기했습니다. 물론 그가 바벨론에 따라갔다면, 유대인들은 그를 매국노로 여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편안함을 포기하고 자신의 동족들과 함께 폐허가 된 유대 땅에 남았습니다. 이미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어 살 수 없었기에, 예전의 종교와 정치 및 모든 것의 중심지였던 미스바에서, 바벨론이 세운 새로운 총독 그다랴를 중심으로 남은 자들이 모였습니다.

예레미야도 그곳으로 갑니다. 왜냐하면 끝까지 남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나치에 대항하다 순교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의 신학은 고난을 함께 하는 신학입니다.

나치의 박해가 시작되었을 때, 본회퍼 목사는 개신교 신학자이자 유니온 신학교 교수로 일하던 라인홀트 니부어의 초청으로 미국에 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 목사는 독일 국민들과 고난을 함께 하지 않는다면, 전쟁이 끝났을 때 독일교회를 재건하는 일에 동참할 수 없다면서 이를 거절합니다. 그에게는 아직 이루어야 할 사명이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심정 또한 본회퍼 목사와 동일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위대한 신앙인들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위대하다는 의미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자리에, 어머니는 어머니의 자리에, 남편은 남편으로서 아내는 아내로서, 부모는 부모로서 자녀는 자녀로서, 직장인은 직장의 지위에 따라, 비즈니스를 하시는 분은 그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이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예레미야처럼 본 회퍼 목사처럼 나에게 주어진 사명의 자리에서 끝까지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추석입니다. 자녀로서의 사명도 감당하시기를 바랍니다. 부모님이 멀리 계시다면 전화로 자녀 된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어떨까요? 부모라면 멀리 있는 자녀들을 전화로 축복하는 것은 어떨까요? 사명은 곧 사랑입니다.



 

1 The word came to Jeremiah from the Lord after Nebuzaradan commander of the imperial guard had released him at Ramah. He had found Jeremiah bound in chains among all the captives from Jerusalem and Judah who were being carried into exile to Babylon. 2 When the commander of the guard found Jeremiah, he said to him, “The Lord your God decreed this disaster for this place. 3 And now the Lord has brought it about; he has done just as he said he would. All this happened because you people sinned against the Lord and did not obey him. 4 But today I am freeing you from the chains on your wrists. Come with me to Babylon, if you like, and I will look after you; but if you do not want to, then don’t come. Look, the whole country lies before you; go wherever you please.” 5 However, before Jeremiah turned to go, Nebuzaradan added, “Go back to Gedaliah son of Ahikam, the son of Shaphan, whom the king of Babylon has appointed over the towns of Judah, and live with him among the people, or go anywhere else you please.”


Then the commander gave him provisions and a present and let him go. 6 So Jeremiah went to Gedaliah son of Ahikam at Mizpah and stayed with him among the people who were left behind in the land.



The future Jeremiah kept proclaiming became reality.

Chapters 40-43 record the story after the fall of Jerusalem. Today's scripture is the story of Jeremiah's release.

Theological Meaning of Jerusalem's Destruction (verses 1-3)

Nebuzaradan, the commander of Babylon army, finds Jeremiah among the captives taken to Babylon and releases him. At first glance, it seems to contradict with the previous chapter 39:11-14, but it is not.

Whereas the contents of chapter 39 describe only the overall outcome, today's scripture shows us the details of Jeremiah's release. Perhaps Jeremiah was mixed into a group of exiles because of the administrative errors of the soldiers carrying out orders. Fortunately, the commander of the army finds Jeremiah and releases him.

Ramah is today's Al-Ram (Er-Ram), about 5 miles (8 km) north of Jerusalem.

It was a gathering place in the middle of the captivity to Babylon, there was Rachel's tomb, and there Jeremiah also prophesied:

This is what the Lord says:

“A voice is heard in Ramah,

mourning and great weeping,

Rachel weeping for her children

and refusing to be comforted,

because they are no more.”

(Jeremiah 31:15)

It is recorded that the word of God came to Jeremiah at this time.

Its content (verses 2-3) is the theological meaning of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But instead of Jeremiah's mouth, it came from the mouth of the gentile commander Nebuzaradan.

Why was Jerusalem destroyed? How could Jerusalem be destroyed?

The following is a summary of the Gentiles' confession, the answer to the theological question that comes to mind in all people of Judah.

1) The Lord acted in accordance with His Word.

2) Because Judah sinned and disobeyed the Lord.

This is not a confession of faith from Nebuzaradan, the commander. He was already aware of Jeremiah's prophecy, and he only admits that all events were fulfilled according to the prophecy. Soon-jin Choi, an Old Testament professor at Suwon Seminary, said the following:

The destruction of Jerusalem is explained from a covenantal point of view.

The irony is that this explanation was handed over to Jeremiah by a pagan Babylonian captain. Through this peculiarity, the narrator emphasizes that the cause of Jerusalem's destruction is clearly understood even by the pagans.

Occasionally, what is clearly seen by the third party may not be so obvious with the concerned party. Which was the case of Judah.

Judah still does not understand clearly what sins they committed and what God has done.

There are times when we make these mistakes. One of the things we need in our life of faith is objectification of the situation.

When we interpret the situation only from a subjective position, we may not be able to grasp the correct circumstance. Just like Judah.

Sometimes we need to open wide our eyes, take a step back, and see and interpret the situation correctly!

We may then begin to see the clear vision of God for us.

Where the Missionary Should Be (verses 4-6)

Nebuzaradan releases Jeremiah and gives him three options to choose from.

First, go with Nebuzaradan to Babylon.

With this option, Jeremiah would enjoy wealth and peace. "Look after you" in Hebrew

is עיני את אשים (wə·’ā·śîm itti ene) in direct translation it is “with my own eyes” meaning the commander will treat Jeremiah well with high positions.

Second, go wherever Jeremiah pleases.

Jeremiah even has the option to flee to another third country.

Third, return to Judah and stay with Gedaliah the governor.

At this, Jeremiah chooses to return to Judah.

Nebuzaradan gave Jeremiah provisions and presents and let him go.

I feel that it is God's little comfort for the prophet who has worked hard thus far.

Jeremiah has given up the wealth and peace that could be enjoyed.

Of course, if Jeremiah had followed Babylon, the Jews would have considered him a betrayer. However, he gave up his comfort and remained with his people in the ruins of Judea. As Jerusalem was already in ruins and could not be inhabited, the remnant gathered at Mizpah, the former center of religion, politics, and everything, centered on the new governor of Babylon, Gedaliah.

That is where Jeremiah went. In order to fulfill the remaining mission until the end.

Pastor Dietrich Bonhoeffer's theology, who was martyred against the Nazis, is a theology of suffering. When the Nazi persecution began, Pastor Bonhoeffer was offered to stay in the United States at the invitation of Reinhold Neibuhr, a Protestant theologian and professor at Union Seminary. However, Pastor Bonhoeffer rejects this offer because he cannot join the reconstruction of the German church when the war ends unless he goes through hardships with the German people. He still had a mission to fulfill.


I wonder if Jeremiah's feelings were also the same as Pastor Bonhoeffer's. Great believers know where exactly they should be. Here, the word "great" does not mean grandiose. If you are a father then remain in father’s position, mother in hers, husband and wife in their positions, parents, children, workers, and those who conduct business in their roles are great believers who faithfully fulfill their roles from their positions.

Like Jeremiah and Pastor Bonhoeffer, I pray that we will be the congregation who will fulfill the mission from the position given to us, to the end!

Today is Korean Thanksgiving day. I hope we all also fulfill our mission as children. If your parents live far away, how about fulfilling the mission(?) by giving them a call? If you are a parent, why not bless your distant children over the phone? The mission is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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