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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6 새벽묵상 - 사람을 살리는 노래 (신31:14-29)



(1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죽을 기한이 가까웠으니 여호수아를 불러서 함께 회막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에게 명령을 내리리라 모세와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회막에 서니

(15)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에서 장막에 나타나시고 구름 기둥은 장막 문 위에 머물러 있더라

(16) 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조상과 함께 누우려니와 이 백성은 그 땅으로 들어가 음란히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르며 일어날 것이요 나를 버리고 내가 그들과 맺은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내림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냐 할 것이라

(18) 또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들을 따르는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 그들의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수많은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아노라

(22) 그러므로 모세가 그 날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쳤더라

(23) 여호와께서 또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인도하여 내가 그들에게 맹세한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하시니라

(24)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친 후에

(25) 모세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메는 레위 사람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6) 이 율법책을 가져다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곁에 두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7)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8) 너희 지파 모든 장로와 관리들을 내 앞에 모으라 내가 이 말씀을 그들의 귀에 들려주고 그들에게 하늘과 땅을 증거로 삼으리라

(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길을 떠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하게 하므로 너희가 후일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제가 좋아하는 CCM 찬양 사역자 중에 김명식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한국 컨티넨탈 싱어즈의 지휘자로 활동을 하다가 솔로로 전향하여1995년 1집 앨범 <영원한 사귐>을 출시하고 큰 호평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봄, 승리, 오직 예수 등 김명식씨 1집의 모든 곡을 좋아합니다.

2009년 3집 앨범인 <사람을 살리는 노래>를 출시 했는데, 타이틀 곡이 사람을 살리는 노래 입니다.

노래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내 노래가 상한 영혼 일으켜 다시 살게 하는 노래가 되길

주 뵈올 때 착한 일꾼이라 칭찬받기 나 원하네

처음에 이 곡을 들었을 때는 노래가 사람을 살린다는 것이 좀 과장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본문을 보면서 충분히 노래가 사람을 살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보통 찬양을 정의할 때 곡조 있는 기도라고 합니다. 기도를 통해서 사람이 살 수 있다면, 곡조 있는 기도인 찬양을 통해서 얼마든지 사람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좋은 가사에 음악이 입혀지면 그 찬양의 영향력은 매우 커집니다.

우리가 힘들고 지칠 때 종종 찬양을 통해서 힘을 얻고 눈물을 흘리고 회복하는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어제 본문에서는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백성들 앞에서 지도자 이취임식을 했다면, 오늘은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와 여호수아를 성막 앞으로 불러 그 이취임식을 인준하십니다. 혹시 모세가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선택한 것에 의구심을 품었던 자들도 절대로 반박할 수 없도록 하신 하나님의 조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이제 곧 죽을 것을 말씀(14a, 16a절) 하시며, 여호수아에게는 이스라엘 자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어가게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이기에 그는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23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예언도 잊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그들의 미래는 40년을 한결같이 지도한 모세의 가슴을 찢어지게 합니다. 그들은 음란하게 그 땅의 이방 신들을 따를 것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언약을 어길 것(16절)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릴 것이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얼굴을 숨기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떠났다고 불평하며, 더욱 우상 숭배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얼굴은 더욱 볼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굴을 비추시는 것은 축복 자체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는 것은 저주입니다. 구약에서 소위 제사장들의 축도로 불리는 민수기 6장에 나오는 축복의 내용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민 6:24-26)

모세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40년간의 목회가 물거품이 되는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아프지만 예측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너희의 반역함과 목이 곧은 것을 아나니 오늘 내가 살아서 너희와 함께 있어도

너희가 여호와를 거역하였거든 하물며 내가 죽은 후의 일이랴 (27절)

여기서 너희의 반역함의 원형은 쓰다, 불쾌하다 라는 의미의 마라 מרה 입니다. 인간의 반역은 하나님에 대한 반감에서 시작됩니다. 목이 곧은 것 이라는 의미의 원뜻은 주인의 뜻을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고집을 부리는 가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미 모세가 지도하던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이 보여준 모습입니다. 하물며 모세가 죽은 후에는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대안을 마련합니다. 3가지 증인을 세웁니다. 이 언약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첫 번째 증인은 모세의 노래(19절)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언약의 내용을 노래로 만들어 이스라엘 자자손손 부르게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노래가 신명기 32장의 내용입니다.

주석가 메튜 헨리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신 이유를 다음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이 노래가 제대로만 활용된다면 이스라엘의 배교를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만일 그들이 배교했다면 언제가 이 노래를 통하여 깨닫고 회개하여 돌이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노래가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증인은 이 율법책(26절)입니다. 이 율법책[1]은 넓게 보면 모세오경이고, 좁게 보면 신명기입니다.

이것은 십계명에 대한 해설서로 볼 수 있으며, 언약궤 옆에 두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언약의 증거, 증인이 되는 역할을 합니다.

세 번째 증인은 하늘과 땅(28절)입니다. 온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과 성민(聖民) 이스라엘은 하늘과 땅을 하객으로 언약의 결혼식을 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증인 이 언약의 증인이 될 것이고, 만일 언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하늘과 땅이 심판의 도구가 될 것 입니다.

인간은 축복을 주면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반대로 저주를 내려도 여전히 고집을 피고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들을 떠났다고 불평합니다. 구제불능입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은혜 밖에는 없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겔 11:19a)

새로운 마음과 영을 주시는 길 밖에는 구원의 답이 없습니다. 바로 예수의 영과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날 떠나지 않고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오직 예수와 십자가만을 바라 볼 수 있었습니다.[2] 계속하여 사람을 살리는 이 노래를 부르기를 원합니다!

https://youtu.be/-6Gh0TINXJc (김윤진 간사) 버전


https://youtu.be/Uh-f0BXyNJA (이성재 목사) 버전


[1] 오늘날의 책 개념과는 다릅니다. 오늘날과 같은 책 개념은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이 활성화 한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책은 단순히 기록된 문서였습니다. 아주 짧은 편지도 책(세퍼) סֵ֤פֶר 불렀습니다. 본문의 책은 양피로 만든 두루마리입니다(송병현, 엑스포지멘터리 신명기, 632p). [2] 김명식, 사람을 살리는 노래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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