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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12 새벽묵상 -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라! (신30:1-10)



1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로부터 쫓겨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2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포로에서 돌아오게 하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니

4 네 쫓겨간 자들이 하늘 가에 있을지라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모으실 것이며 거기서부터 너를 이끄실 것이라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네 조상들이 차지한 땅으로 돌아오게 하사 네게 다시 그것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또 네게 선을 행하사 너를 네 조상들보다 더 번성하게 하실 것이며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적군과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던 자에게 이 모든 저주를 내리게 하시리니

8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

9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이 율법책에 기록된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고 네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여호와 네 하나님께 돌아오면 

1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과 네 몸의 소생과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 소산을 많게 하시고 네게 복을 주시되 곧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을 기뻐하신 것과 같이 너를 다시 기뻐하사 네게 복을 주시리라


램브란트[1]는 네덜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화가입니다. 젊은 시절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노년에는 자녀와 아내를 먼저 천국에 보내며 실의에 빠집니다. 뿐만 아니라 방탕한 생활로 재정적인 어려움까지 겹쳐 파산에 이르게 됩니다. 만년에는 끼니도 걸러야 할 정도로 비참한 삶이었지만,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를 했으며 이것은 그의 작품 세계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탕자의 귀향 Parable of the Prodigal Son[2] 이 바로 그러한 자서전적인 작품입니다.

램브란트와 같은 네덜란드 출신의 예수회 사제이자 심리학자로 예일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치던 헨리 나우웬은 1985년 하버드를 그만두고, 프랑스 파리에 있는 정신지체장애인 공동체 라르쉬 (L’ Arche)에서 여생을 장애인들과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라르쉬의 지부인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데이브레이크(Daybreak) 공동체에 머물렀고, 1996년 심장마비로 죽기까지 그들과 함께 생활하였습니다.

헨리 나우웬이 모든 기득권을 내려 놓고 이러한 결심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램브란트의 그림 탕자의 귀향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그림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동일한 제목으로 책을 썼습니다.

누가복음 15:11-32에서 말씀하신 예수님의 비유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노년의 램브란트를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또한 그의 그 그림은 모든 것을 누리던 헨리 나우웬을 장애인 공동체에서 생을 마감하도록 결단하게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어쩌면 기다리시는 아버지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가는 과정인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유대문화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팀 켈러 목사는 탕부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곧 아버지의 낭비(?)하는 사랑을 중심으로 누가복음의 탕자의 비유를 재해석합니다. 그래서 탕부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돌아올 탕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세는 그의 마지막 설교를 소망으로 마무리 합니다.

28, 29장의 무시무시한 저주가 이스라엘에 임하여 마치 모든 것이 끝난 것과 같은 상황에서 다시 소망의 불이 타오릅니다. 포로로 잡혀간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의 예언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들의 불순종은 신명기의 저주가 그대로 임하여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는 상황이 됩니다. 그 기간은 70년이었습니다. 충분히 민족의 정체성 자체가 사라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3번[3]에 걸쳐 그들이 귀환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유대민족의 3차 귀환을 지도했던 느헤미야가 오늘 본문의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느 1:8-9)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입니다.

너는 돌아와 다시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모든 명령을 행할 것이라(8절)

그들이 축복의 땅으로 돌아올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아버지 하나님께로 먼저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8절에 내용이 다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함축하면 돌아오다 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돌아오다 שׁ֔וּב (슈브)가 6회(1, 2, 3, 3, 8, 9, 10절) 등장합니다.

1절에 기억이 나거든 으로 번역된 원문이 슈브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탕자의 비유에서 탕자가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눅 15:17) 가 바로 기억하는 것이요, 돌이키는 것입니다.

돌아오다(슈브)는 히브리어 알파벳 쉰 ש 과 바브 ו 그리고 베트 ב 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히브리어는 알파벳마다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쉰은 전능자 하나님 샤다이 שד׳ 를 상징합니다. 

바브는 을 상징하고, 베트는 을 상징합니다.

결국 돌아오다 라는 의미의 슈브 동사는 전능자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입니다.

아무리 매를 맞고 벌을 받고, 심판을 받아 고난 중에 있을 지라도, 그리고 그 심판으로 너무 멀리, 너무 멀리 아버지 집을 떠났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자를 반드시 찾아 내십니다. 그리고 그 자녀들을 반드시 집으로 데려 오십니다.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올 때 비로소 인생은 평안을 누립니다. 모든 것이 풍족(5-10절)합니다. 아버지 집에 거하는 자체가 축복입니다. 이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다 שׁ֔וּב (슈브)는 회개로 번역할 수 있는데 이것은 마음의 애통함이나 후회의 의미가 아닌 행위적인 것입니다. 가던 길을 돌이켜 U-Turn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나는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습니까? 혹시 아버지 집과 반대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요?

더 늦기 전에 다시 돌아옵시다. 아버지 집에는 먹을 것이 풍족한 일꾼이 많이 있습니다(눅 15:17).

하물며 자녀인 우리들은 얼마나 풍족하겠습니까?

아버지 집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1] 렘브란트 하르먼손 반 레인(네덜란드어: 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1606년 7월15일~1669년 10월4일)은 바로크 시대의 네덜란드 화가이다.     빛의 화가라고도 불리는 그는 일반적으로 유럽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이자 판화가 중 한 사람으로 여겨지며 특히 네덜란드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이기도 하다. [2] 가로 1.8m, 세로 2.4m의 유화로 그려진 대작입니다. 1669년 렘브란트의 유작과도 같은 작품으로 현재 원작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3] 바사왕 고레스 칙령에 의해 3차에 걸쳐 포로 귀환이 이루어집니다. 1차는 B.C.537년 스룹바벨과 예수아에 의해(스 2:1-70), 2차는 B.C.458년 에스라에      의해(스 7:1-10), 3차는 B.C.444년 느헤미야(느 2:9-11)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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