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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9 새벽묵상 - 지켜야 할 선線 (신25:11-19)



김기사 그 양반. 선(線)을 넘을 듯 말듯 하면서 절대 넘지 않아. 근데 냄새가 선(線)을 넘지.

영화 <기생충>에서 운전기사 기택(송강호 분)의 처세술을 칭찬함과 동시에 그의 몸에 밴 반지하 특유의 냄새를 은근히 조롱하는 사장 박동익(이선균 분)이 하는 대사입니다. 영화에서 시종일관 박사장은 선(線)을 강조하는 캐릭터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이란 인간관계에 있어서 상대방이 나에게 더 이상 관여하거나 들어오지 않기를 원하는 개인적인 영역이나 문제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선을 지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선이 너무 짙으면 다가가기가 어렵고, 그렇다고 선이 없으면 그 관계는 오히려 무너지기 쉬운 것을 경험합니다. 또한 그 선은 개개인의 성향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서로 적절하게 그 선에 대해서 진실하게 얘기 나누고, 서로가 원하는 선을 지켜주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인간 상호간의 관계에 있어서 지켜야 할 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1-12절은 두 남자가 싸울 때 아내들이 지켜야 할 선(線) 입니다. 아무리 위급하다 하더라도 한 남자의 아내는 상대방 남성의 급소를 잡아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럴 경우에는 그 여인의 손을 절단해야 합니다.

오늘날 문화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율법입니다. 그래서 유대 랍비들도 나중에는 손을 자르다 는 의미를 손 값을 계산하여 성소에 들여 놓으라는 의미로 해석했습니다.

왜, 모세는 이러한 율법을 명령했을까요? 현대 문화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고대 이스라엘 문화에서는 여성이 남편이 아닌 다른 남성의 중요 부위를 만지는 것을 매우 경멸스럽고 수치스러운 행동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한 자칫 잘못하여 상대방 남성이 생식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그 가문의 위기가 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날로 적용을 하자면,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 되고, 남편 싸움이 가문의 싸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싸움을 말리고, 남편을 구하려는 목적이 선(善) 하다고 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선(線)이 있는 것입니다. 당사자들이 해결하거나 아니면 다른 공적인 권력의 힘을 빌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정당방위 법은 정당하다고 생각합니다. 강도나 나쁜 사람이 배우자를 죽이려고 하는데, 가만히 보고 있을 배우자가 있을까요? 아마도 일반적인 다툼 가운데에 해당하는 규례라 생각합니다.

13-16절은 상거래 할 때 지켜야 할 선(線) 입니다.

본문에 큰 추와 작은 추(13절)는 큰 돌과 작은 돌을 의미하고, 큰 되와 작은 되(14절)는 큰 에바[1]와 작은 에바를 의미합니다. 상거래를 할 경우, 내가 물건을 살 때는 무거운 추나 큰 되를 이용하여 기준량보다 더 많이 가져오고, 반대로 물건을 팔 때는 가벼운 추나 작은 되를 사용하여 적게 주는 것은 아주 가증스러운 악행입니다.

이러한 행위는 언약관계의 공동체인 이스라엘 백성들 서로 상호간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도량형기의 부정은 이스라엘 사회를 큰 불신과 혼란에 빠뜨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십니다.

규격에 맞지 않은 저울추는 주님께서 미워하신다. 속이는 저울은 나쁜 것이다. (잠 20:23, 새번역)

야훼께서는 두 가지 저울추를 쓰는 것을 역겨워하신다. 저울눈을 속이는 것은 옳지 않다. (잠 20:23, 공동번역)

기껏 한다는 말이, "초하루 축제가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낼 수 있을까? 되는 줄이고, 추는 늘이면서, 가짜 저울로 속이자. (암 8:5, 새번역)

속이는 저울추와 도량형기는 하나님께서 역겨워하시는 일이요,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입니다. 저울추와 도량형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 상거래 하는 자들이 지켜야 하는 선(線) 입니다. 크리스천 경영인들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정직하게 비즈니스를 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는 가장 대표적이고 일반적인 방법 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고 진실되게 사업하시는 분을 버리시지 않습니다.

17-19절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선(線) 입니다.

모세는 아말렉 족속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기억하고(17절), 너는 잊지 말지니라(19절) 두 번에 걸쳐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아말렉을 이 땅에서 지워버리라고 말합니다. 아말렉은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의 손자이고, 그로부터 시작된 족속입니다.[2] 에서의 후손인 에돔과는 싸우지도 말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 같은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은 왜 진멸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이스라엘과 아말렉의 악연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시기부터 시작됩니다.[3] 그들은 힘들고 지친 이스라엘을 공격했을 뿐 아니라 뒤에 쳐진 노약자들을 공격하는 야비한 전투를 합니다.

이러한 아말렉과의 악연은 바벨론 포로기까지 이어집니다. 에스더서를 보면 하만이라는 자가 유대인을 멸절시키려 계략을 꾸몄다가 오히려 에스더 여왕에게 당하여 자신의 가족과 민족이 말살을 당합니다.

그런데 에스더서에서 하만을 아각 사람(에 3:1)이라고 소개하는데, 아각은 아말렉 왕[4]을 말합니다.

결국 하만은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이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유대인들을 미워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근본적인 이유는 18절 하반절에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8b절)

아말렉은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처럼 아말렉 역시 하나님 앞에서 선을 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요즘 COVID-19 사태로 사회적 거리를 6ft 이상으로 유지해야 합니다. 혹시 보균자를 만나도 마스크를 하고 그 선을 넘지 않으면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을 넘으면 죽습니다!(영적인 교훈을 위한 과장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무엇인지 묵상하고, 선을 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1] 에바(ephah)는 바구니라는 의미로, 밀가루, 보리, 볶은 곡식의 양을 나타낼 때 사용하는 부피를 나타내는 단위입니다(레 5:11, 룻 2:17). 본문에는 ‘되’로 번역되었고, 그 양은 약 22ℓ(12되)에 해당합니다. [2]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창 36:10a) [3] 출 17:8-16, 르비딤 지역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승리하고 손을 내리면 패했던 전투가 바로 아말렉과의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후 모세는 제단을 쌓고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 라고 이름합니다. 이곳에서 여호와께서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실 것을 맹세하십니다. [4] 아말렉 사람의 왕 아각을 사로잡고 칼날로 그의 모든 백성을 진멸하였으되 (삼상 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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