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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8 새벽묵상 - 아무개 씨 (신25:1-10)



우리 말에 불행 중 다행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어사전의 정의는 좋지 않은 일이 더 번지지 않고 잘 마무리되어 다행스러움 으로 되어 있습니다. 불행(不幸), 다행(多幸)이 모두 한자이기는 하지만 이에 해당하는 한자성어를 굳이 찾자면 구사일생(九死一生)이나 천만다행(千萬多幸)일 것입니다.

영어로는 어떤 표현일까 찾아봤더니, it could have been worse (더 나빴을 수도 있어)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율법은 바로 불행 중 다행의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3절은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공정한 재판에 의하여 의인과 악인이 가려지면, 악인에 대한 형벌에 대한 규례입니다. 태형을 선고 받을 경우 죄질에 따라 매를 맞는 숫자가 다르겠지만, 최고형은 40대까지 입니다. 왜, 40대까지일까요?[1] 그것은 아무리 죄를 지은 죄인이라 할지라도,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짓지 않은 경우에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인정해주는 배려(3절)라 할 수 있습니다.

범죄자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입니다. 이 율법은 오늘날 이슈가 되는 범죄자 인권에 대한 것입니다.

어제(5/26) 뉴스에 가슴 아픈 사건 하나가 보도되었습니다. 미국 미네소타 주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4명이 한 흑인 용의자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수갑을 채운 채로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는, 경찰관 한 명이 무릎으로 용의자 목을 5분이 넘도록 눌러 결국에는 질식사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모든 행인들이 용의자 코에서 피가 나니까 그만하라고 외치고, 용의자 또한 숨을 못 쉬겠다고 제발 살려달라고 말했지만 결국 용의자가 숨을 거두고 나서야 경찰관은 그의 목을 놓아주었습니다. 모든 상황이 담긴 동영상이 SNS에 올라오자, 미니애폴리스(Minneapolis) 시장 제이컵 프레이(Jacob Frey)는 해당 경찰관 4명을 즉시 해고하고, “그들을 해고한 것은 정당한 조치다”라고 하며 사태 진화에 나섰지만, 이미 성난 시민들의 시위는 걷잡을 수 없이 지역 사회는 물론 주변 대도시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공권력이 힘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강력 범죄 용의자가 아닌 이상은 범죄자에 대한 인권은 보호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원칙입니다. John Calvin은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3b절) 를 너무 심한 매질로 인하여 흉측한 불구의 몸이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고 해석했습니다. 범죄에 대해서는 마땅히 징벌하고 정의구현을 해야 하지만 비록 범죄자라 할지라도 기본 인권은 보호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4절은 일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는 율법입니다. 일하는 소가 일하는 중에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으로 비록 짐승이라도 그 수고의 대가를 누리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법입니다. 고된 노동을 하는 소의 입장에서는 불행 중 다행입니다.

한편 사도 바울은 본 구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가 생활에 필요한 대가를 받는 것이 마땅한 것임을 말하였습니다.[2]

5-10절은 계대 결혼(繼代結婚, Levirate Marriage)에 대한 규례입니다.

계대 결혼[3]이란 형제 중에 누군가가 아들을 낳지 못하고 죽으면 우선순위에 따라 그 형제 중 하나가 죽은 형제의 아내를 아내로 맞아 대를 잇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물론 현대의 문화에서는 매우 당황스러운 명령이지만, 의술이 발달하지 못하고 생명의 안위를 보장할 수 없는 고대 사회에서는 대가 끊이지 않고 유지되고, 가문의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그 형제가 이 일을 싫어한다면, 죽은 자의 아내는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고, 장로들은 그 죽은 자의 형제를 불러 다시 의사를 묻습니다. 여전히 그 형제가 계대 결혼을 할 생각이 없으면, 죽은 자의 아내는 장로들 앞에서 남편의 형제의 신을 벗기고, 얼굴에 또는 그 면전에서 침을 뱉고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말합니다. 앞으로는 그의 이름은 신 벗김 받은 자의 집 

בית חלוץ הנעל (벧 하루스 한나알)이라는 가문적 불명예를 안게 됩니다.

실제로 성경에 이러한 자가 2명 나옵니다. 먼저는 유다의 아들 오난입니다.[4] 유다는 장자인 엘을 다말과 결혼 시킵니다. 엘이 자녀가 없이 죽자, 둘째 오난을 다말과 결혼을 시켜 대를 이으려 합니다. 하지만 오난은 자신으로 말미암아 형수인 다말이 임신을 하면 그 아이에게 아버지 유산이 자신보다 2배 많이 가는 것이 싫어서 땅에 설정을 하고 그 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습니다.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까지 잘 못 될 것을 염려하여 다말을 처가로 보내고는 모르는 체 합니다. 결국 다말은 계략을 짜서 시아버지인 유다를 통해서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베레스[5] 입니다.

또 다른 한 명은 룻기에 등장하는 Mr.아무개(룻 4:1)입니다. 불명예스러운 그의 이름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사이에는 말론과 기룐 두 아들이 있었지만, 아버지를 비롯하여 두 아들은 모두 죽고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만 남습니다. 나오미는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른 룻만 데리고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옵니다. 그곳에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무를 자 두 명이 있었는데, 아무개 씨와 보아스 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우선 순위가 앞선 아무개 씨는 치러야 할 많은 비용이 싫어서 거절합니다. 신 벗김을 받은 자의 집이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게 되고, 룻과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가 오벳입니다. 오벳이 누구입니까? 그의 아들은 이새고, 이새의 아들은 다윗입니다. 놀랍습니다! 하나님은 고엘제도, 곧 계대 결혼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어 가십니다.

나오미와 룻에게는 남편이 죽는 불행 가운데 계대 결혼이야말로 불행 중 다행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형제의 어려움을 모르는 척 하는 아무개 씨처럼 살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형제의 어려움을 돌보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써 내려 가십니다. 시대와 문화에 따라 형식과 그 표현 방식은 변하지만 그 사랑의 정신과 중심은 영원할 것입니다.


[1] 후대 유대인들은 40에서 한 대를 감한 39대만 때렸는데, 그 이유는 혹시라도 계수를 잘못하여 40대를 초과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고후 11:24) 라고 말한 것이 바로 이 처벌입니다. [2]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고전 9:9-10a)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 5:18) [3] 좀 더 넓은 의미로 고엘이라 말합니다. 고엘 גאל 은 '무르다' ' 되찾다' ' 구속하다' 는 의미를 가진 '가알'에서 파생된 말로서 근족, 기업 무를 자,   계대를 이어줄 자, 복수해줄 자 등을 의미합니다. 곧 고엘은 형제 대신에 땅 값을 내고 땅을 찾아주거나(기업 무르는 법), 계대 결혼으로 대를   이어주거나(계대결혼법), 죽음에 대해 복수를 해주는 것입니다(동해보복법). [4] 창세기 38장을 읽어봅시다. [5] 베레스는 보아스의 6대 할아버지입니다. 결국 유다와 며느리 다말 사이의 계대결혼으로, 보아스와 룻의 계대 결혼으로 다윗이 탄생했고, 예수님이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이 땅에 성육신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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