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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7 새벽묵상 - 은혜 입은 자의 삶 (신24:14-22)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적인 표현으로는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1] 가 될 것입니다. 만일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자세로 살아간다면 인간 세계의 수많은 갈등이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조금씩 입장만 바꿔서 생각을 하고, 서로의 입장을 들어 준다면 말입니다.

어제(5/25) 날짜로 한국 경북 경주에서 기막힌 사건 하나가 뉴스에 보도 되었습니다. 9살짜리 남자 아이가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도망치는데 하얀색 SUV 차가 뒤따라오더니 우회전하여 도망하는 자전거를 따라 우회전하면서 자전거 뒷바퀴를 쳐 넘어뜨리고는 자전거를 밟고 넘어가 멈추는 장면이 CCTV에 고스란히 촬영된 것입니다. 심지어 사고가 난 장소는 어린이보호구역인 School zone 이었습니다. 여성운전자는 내리자마자 아이의 상태에는 관심도 없이 자전거만 치우고, 아이는 다리를 절면서도 연신 그 여성에게 머리를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이어집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사고 현장으로부터 200m 떨어진 곳 놀이터에서 9살 남자 아이가, 5살 여자 아이를 때리고 사과도 없이 도망한 것입니다. 이에 격분한 여자 아이 엄마가 차를 몰고 남자 아이를 따라와 차로 치어 넘어뜨린 것입니다. 헬멧도 쓰지 않은 남자아이가 차 방향으로 넘어졌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안 남자아이의 누나가 해당 영상을 SNS에 올리면서 일파만파로 퍼져나가 9시 뉴스에까지 보도되게 된 것입니다. 이에 운전자 여성이 살인미수로 벌을 받아야 한다는 댓글이 주로 달리고 있지만, 반면에 자신보다 어린 여자 아이를 때리고 도망한 남자 아이도 잘못이 있다는 의견도 있는 상황입니다.

만일 나라면 어떤 반응을 했을까요? 내가 만일 맞았던 5살짜리 여자 아이 부모라면? 때린 아이가 사과도 없이 이름도 주소도 말하지 않고 도망한다면? 또 내가 만일 어떤 여성이 운전하는 차에 고의로 치여서 넘어진 아들의 엄마라면?

오늘 본문은 가난하고 연약한 사회적 약자의 대표인 객과 고아와 과부에 대한 긍휼의 규례입니다.

14-15절, 일용직 일꾼들의 일당을 체불하지 말고 매일 주라는 것입니다.

16절, 사람은 각자의 죄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연좌제[2]는 없습니다.

17절, 객, 고아, 과부의 재판을 억울하게 하면 안 됩니다. 또한 한 벌뿐인 옷을 저당해도 안됩니다.

19-21절, 추수를 할 때도 밭에 일정량을 남겨 놓아 가난한 자가 누구나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합니까?

본문 율법의 핵심은 역지사지입니다. 18절과 22절에 모세는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고 명령합니다. 이러므로 는 원인과 결과를 규명하는 접속사 입니다. 앞의 문장이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과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 하셨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자신들 역시 타국에서 객이 되었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타인의 어려움을 못 본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체가 은혜를 입은 은혜의 공동체입니다.

이스라엘은 실제로 출애굽의 은혜를 받아서 그렇다고 치자면, 우리는 왜 역지사지의 삶을 살아야 할까요?

신약에서 예수님은 일 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를 말씀 하십니다.[3] 한 임금이 만 달란트 빚진 자를 용서해 주었는데, 용서 받은 자가 길 거리에서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자 멱살을 잡고 감옥에 잡아 넣습니다. 그러자 임금은 그를 다시 붙잡아 감옥에 영원토록 가둔다는 비유입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하나님 앞에 예수로 말미암아 죄 용서함을 받은 자를 만 달란트 빚진 자에 비유합니다.

만 달란트는 18만년 동안 월급을 하나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하는 천문학적인 양의 돈입니다. 다 쓰기도 모으기도 불가능한 금액입니다. 반면에 백 데나리온은 백일치 월급입니다. 굳이 오늘 날로 환산하자면 $10,000 정도입니다. 꽤 큰 돈이지만, 만 달란트에 비하면 돈도 아닙니다.

우리가 역지사지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한량없는 죄의 값을 대신 갚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입은 자로서 은혜를 베풀어야 하는 자가 우리입니다.

자! 그렇다면 아까 그 사건의 부모들로 돌아가서… 마음에 결정을 했습니까?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잘은 모르겠지만, 자전거 탄 아이를 친 여성은 법적인 처벌은 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리 남자 아이가 자신의 딸을 때리고 도망했다고 하지만, 자동차로 자전거를 밀어버리는 것은 살인행위에 해당하는 것이니까요. 왜 하나님이 동해보복법을 주셨는지 알겠죠?

물론 남자 아이가 어리고 연약한 여자 아이를 때린 것도 결코 잘한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먼저 여성 운전자가 남자 아이 부모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행동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했어도 9살 어린이를 자전거와 함께 차로 밀어버리는 것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입니다. 사과와 함께 적절한 보상과 합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가 진심으로 사과를 한다면 남자 아이 부모들은 그녀를 용서하고, 그들 역시 자신의 아들이 여자 아이를 괴롭힌 것을 정중하게 사과하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약속 해야 할 것입니다.

굉장히 이상적이죠? 하나님의 나라는 이상적인 나라입니다. 혈기와 복수가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라, 은혜가 지배하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비록 두 발은 땅을 디디고 살지만, 우리의 시선은 늘 하늘을 향하여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입은 자로서의 마땅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도 먼저 은혜 입은 자가 은혜 입은 자로서 살아 갈 때 우리의 세상은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1]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눅 6:31) [2] 연좌(連坐, collective punishment)는 죄인의 죄를 가족·친지들에게도 함께 묻는 제도이다. 봉건사회의 왕조국가에서 주로 시행되었다. (위키백과) [3] 마 18: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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