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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6 새벽묵상 - 살만한 세상 (신24:1-13)



얼마 전 한국에 어느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민 한 명이 경비원 아저씨가 자신의 차를 밀었다는 이유로 괴롭히기 시작하여, 코뼈가 주저 앉도록 지속적으로 폭행을 하고 언어 폭력은 물론 협박까지 하여 결국에는 경비원 아저씨가 자살을 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일로 한국 사회는 다시 한번 발칵 뒤집혔고, 반드시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을 하라고 수많은 사람들이 청원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식적이고 일반적인데, 몇몇 상식을 뛰어 넘는 악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른바 싸이코 패스(Psycho Pass)입니다.

인성교육, 가정교육, 사회가 전반적으로 추구하는 목표, 그리고 강력한 처벌이 이러한 범죄에 대한 예방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거룩한 가치를 알려줍니다.

1-4절은 이혼과 재혼에 관련한 규례입니다.

한 남자가 결혼을 했는데, 아내에게서 수치스런 일을 발견하고 더 이상 결혼생활을 지속하기를 원하지 않을 때 남편은 이혼증서를 써서 내보냅니다. 그 여성은 재혼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다시 원래의 남편과는 결합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율법의 핵심은 전남편과 재결합을 금하는 것입니다.

먼저 수치되는 일은 무엇일까요? 수치되는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ערות (에르와트)는 발가벗은, 부끄러운 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 랍비 학파 중 온건파인 힐렐 학파는 남편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모든 이유 라고 해석한 반면, 상대적으로 더욱 엄격한 샴마이 학파는 여자의 음탕함, 곧 간음으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율법대로라면 간음은 이혼증서를 써 주는 것이 아니라, 투석형에 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수치되는 일은 남편이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써서 내보낼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당한 그 무엇일 것입니다. 이혼증서를 써 주는 것은 여성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이혼 증서가 없는 여성은 재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혼증서는 여성의 법적인 권리와 자유를 보장해주는 성문서입니다.

이 율법이 추구하는 것은 남편 된 남자의 자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치 예수의 법적인 아버지 요셉처럼 말입니다. 마리아가 혼인 전에 임신 한 것을 알게 되고 요셉은 그녀를 투석형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게 이혼 증서를 써서 보내려 합니다.[1]

하지만 자비를 베푸는 것에도 분명한 선은 있습니다. 이혼한 그녀가 다시 돌아오더라도 그녀를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왜 이런 명령을 하실까요?[2] 아마도 성결과 거룩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함이라 생각합니다. 이혼 전에 더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결정을 하여야 합니다. 너무 쉽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 모습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원래 일부일처제로 평생을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혼과 다처제를 묵인 하십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성하시며 이혼을 금지 하십니다.

그러나 더 복잡해진 현대는 더욱 다양한 이유로 가정이 아픔을 겪습니다. 이제는 어떤 이유에서든 아픔을 경험한 가정을 위로하고 격려하여 하나님의 아름다운 가정으로 다시 출발하도록 돕는 것이 이 시대의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5절은 새신랑의 군 면제에 관한 율법입니다. 일년 동안 그는 모든 공익 사업에서 면제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행복한 나라입니다. 특별히 새신부를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7절은 유괴에 대한 규례입니다. 개역성경은 후리다 라고 번역한 유인하여 라는 단어는 גֹּנֵ֨ב (가나브)인데, 이것은 훔치다 라는 의미입니다. 사람을 훔치는 것입니다. 사람을 유괴하는 자는 무조건 사형입니다.

8-9절은 악성 피부병에 관한 규례입니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3]도 예외 없이 진 밖에서 일주일을 보낸 것을 기억하라는 의미입니다. 전염성이 강한 피부병은 공동체의 위생을 위해서라도 경계해야 합니다.

6절, 10-13절은 전당물에 대한 규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 다른 사람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물건일 수 있습니다. 가난하여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자의 맷돌 위짝이나, 그의 겉옷이 그런 물건입니다. 유대인에게 맷돌은 한국 가정으로 치자면 밥솥과 같이 매일 식사에 필수적인 도구입니다. 그것을 가져가면 그 가정은 그 날 밥 먹기를 틀린 것입니다.

겉옷은 가난한 자의 이불입니다. 해지기 전에는 반드시 돌려주어야 합니다. 심지어 돈을 빌려 주는 채권자가 채무자의 집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전당물을 가지고 나올 수도 없습니다.

돈을 빌리는 사람이 주는 대로 전당물을 가져가야 합니다.

돈 많은 부자,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호구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그게 맞습니다!

사기꾼 같은 자에게는 당연히 돈을 빌려줄 필요도 없고 자비를 베풀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정말 먹을 것이 없고, 생계를 유지할 수단도 없는 자에게는 자비를 베풀라는 것입니다.

Giver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이 있습니다.

그 가난한 자들이 도움과 자비를 받은 후 자비를 베푼 자를 축복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의로 봐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의롭게 봐주신다면 끝난 이야기 아닌가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베푸는 나로 인하여 내가 속한 공동체가 살만한 세상이 되고, 하나님이 그 일로 나를 의롭게 봐주시고 기뻐하신다면 이것만큼 좋은 일이 있을까요? 일석이조(一石二鳥)입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날 심판에 대해서 말씀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 25:40)

구약의 아버지와 신약의 아들의 마음은 하나였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뜻을 따라, 오늘도 나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우리 가정과 공동체를, 나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1]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마 1:19) [2] 일부 주석가들은 ‘아내 교환’(wife swapping)을 금지하는 취지라고 설명합니다. 남편들끼리 합의하여 각자의 아내에게 이혼증서를 주어 서로에게 보낸 후, 한 동안 즐기다가 다시 이혼 증서를 주어 원래 남편에게로 서로 돌려 보내는 행위를 금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쾌락만을 즐기는 결혼을 뭇야 결혼(쾌락결혼)이라고 합니다. [3] 민 1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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