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19일 미국 CNN에 따르면 아칸소 주 핫스프링스의 경찰은 사회복지사로부터 아동학대 신고를 받고 4세 여자아이를 구출합니다. 엄마 제니퍼 데넌(30)과 그녀의 남자친구 클래런스 리드(47)와 함께 살고 있던 이 아이는 눈과 온몸이 멍투성이였고, 입가에는 말라붙은 핏자국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나 경찰을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이름을 물어봤을 때 아이가 한 대답이었습니다.
4살짜리 여자 아이는 “내 이름은 멍청이(idiot)이에요.”라고 대답했습니다.3
더 심한 사건도 있습니다. 2015년 12월 캘리포니아 레딩(Redding)시 공공창고(public storage)에서 3살 여아와 6살 남아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부검결과 두 아이 모두 치아와 갈비뼈가 부러져 있는 상태였고, 영양실조로 몸무게가 채 18kg(40Lb)도 나가지 않는 상태로 살해 당하여 버려진 것입니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짓을 한 사람은 39살 여성 타미 헌츠맨과 17살 동거남 곤잘로 큐리엘인데, 이들은 새크라멘토 인근 도로에서 다른 여자 어린이를 심하게 때리다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조사 결과 평소 자식과 친척 조카들을 학대했고, 이 가운데 조카 2명을 살해한 뒤 내다 버린 사실이 드러났습니다.4
저는 두 사건의 뉴스를 보는 순간 저도 모르게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습니다. 여러분 저런 인간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뉴스에서 보도하기를 검찰이 저들에게 사형을 구형하려고 한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불쌍하게 매 맞으며, 배고픔 가운데 죽어갔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분노와 눈물이 멈추질 않습니다.
이 분노는 제가 저들보다 더 도덕적으로 뛰어나기 때문도 아닙니다. 저들 또한 그런 환경 가운데 자란 피해자 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전쟁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연관된 것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전쟁을 지금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했다가는 큰 일이 납니다. 모세는 어제 본문에 이어서 오늘도 전쟁과 관련된 규례를 말합니다.
먼저는 가나안 7족속을 제외한 가나안 땅 주변의 민족들과의 전쟁 규례입니다(10-15절).
그들에게는 먼저 “샬롬”을 제안합니다. 만일 그들이 화평 조약을 맺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모두가 살 것입니다. 대신 이스라엘을 섬기는 노예 족속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결코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이 항복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항복이고, 노예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자들은 이스라엘 족속에 흡수가 됩니다. 이스라엘과 동일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이스라엘을 대항하면 모든 남자는 죽임을 당할 것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노예가 될 것이며, 모든 것은 이스라엘의 전리품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가나안 7족에 대한 전쟁 규례입니다(16-18절).
가나안 7족속은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기르가스 이며, 이들은 본래 가나안 원주민을 정복하고 가나안 지역을 점령한 후기 가나안 7족속입니다. 이들과는 샬롬이 없습니다. 무조건 이들은 진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자들이며, 저주 받은 자들입니다. 왜 그럴까요?
먼저는 가나안의 죄악의 잔이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지만 언젠가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심판을 하십니다. 바로 지금이 그 때인 것입니다.
요즘 한국의 어린 십대들의 범죄를 보면 혀를 차게 됩니다. 사실 어른들의 잘못이지요.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모든 세대에 범죄가 만연한 것입니다. 아마 가나안 7족속의 삶이 그랬을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들의 극심한 우상숭배 때문입니다. 앞선 기사들을 보면서 마음에 분노가 올라오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 때문입니다. 죄인인 우리도 그런 자들을 보면 마음에 분노가 올라오는데 거룩하신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자기 자식을 불 가운데 던져서 우상의 제물로 주는 것(오늘날로 치면 아동학대)은 하나님이 가장 혐오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러한 자들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죄는 씨앗까지도 없애야 합니다. 하지만 결국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완전하게 정복 하지 못하고 바로 이 우상숭배의 올무에 걸리게 되지요.
이제는 오늘 본문을 우리의 삶으로 가지고 와 봅시다. 이러한 본문은 영적인 해석을 해야 합니다.
2가지 영적인 세계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항복하는 자만이 진정한 “샬롬”을 누립니다.
비록 하나님의 노예가 되는 것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샬롬과 자유의 비결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에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물질, 미모, 건강, 출세, 자녀 등등
진짜 샬롬,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항복할 때 얻게 됩니다.
어떤 환경이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참 평안, 곧 샬롬이요, 에이레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엡 2:14)
두 번째로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는 “헤렘”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심판을 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이 일관되게 알려주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무분별한 전쟁과 살생, 파괴는 허락하지 않습니다(19-20절). 하지만 하나님의 때가 되면 그 어떤 자비도 없습니다. 그것이 마지막 날 심판의 때입니다. 헤렘을 피할 준비가 되었습니까?
항복합시다! 항복은 두 손을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오늘을 두 손을 들어보지 않겠습니까?
두 손을 들고 찬양 합시다! 두 손을 들고 기도합시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샬롬은 일반적으로 평화, 평강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만나고 헤어질 때 샬롬이라고 인사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샬롬은 매우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 평강은 물론 온전한 신체를 말하기도 하고, 심리적으로 평안한 상태를 말하기도 합니다. 또한 일반적인 구약의 의미는 전쟁이 없는 안전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신약에서는 헬라어 에이레네ειρηνη 인데, 이것은 외적인 것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내적인 평안의 성격이 강합니다. 진정한 평화,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면에서부터 외적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2] 헤렘은 현대 히브리어에서는 "파문", "추방", "몰수", "억제" 등을 뜻합니다. 구약은 금하고, 성별(聖別)하는 것, 봉헌된 것, 저주받은 것 등을 가리 킵니다. 동사로 쓰일 경우 “하람”이라고 하며, ‘완전히 멸하다, 저주 아래에 두다’라고 번역할 수 있고, 명사일 경우 헤렘은 흔히 ‘멸하기로 작정된 물건, 바쳐진 물건’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3]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8/20 16:41 송고, 고미혜 기자, 인터넷뉴스 [4] YTN 뉴스, 2015.12.23, 미국 30대 여성, 아동 학대·살해...美 사회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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