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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7 새벽묵상 - 행복추구권 (신10:1-22)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듣고 그들을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재계약을 맺습니다. 처음과 다른 것이 있다면 모세가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 호렙산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쉽게 표현하자면 계약을 파기한 쪽에서 다시 계약서 2부 작성하고 볼펜 준비해서 오라는 것입니다. 

좀 논란이 되는 부분(3-5절)이 다음에 등장합니다. 바로 조각목으로 만든 궤입니다.  과연 싯딤(아카시아)나무로 만들어진 이 궤가 법궤냐, 아니냐가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됩니다.  출애굽기를 살펴보면 언약궤/법궤는 출애굽 2년 1 월1일에 브살렐이라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법궤는 모세가 율법을 받은 후 최소 6개월 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마치 모세가 두 번째 십계명을 받을 때 궤를 만들고, 그 궤에 십계명을 넣었던 것처럼(5 절) 말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법궤가 둘이 있었다고 해석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모세가 결과론적인 기술을 하고 있으므로 법궤는 하나라고 주장합니다. 본문을 얼핏 보면 마치 모세가 궤를 만들어서 산에 들고 올라 간 것 같지만, 본문은 그렇지 않고 하산 한 후에 두 돌판을 법궤에 넣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모세는 호렙산에서 법궤에 대한 명령을 듣고 내려와 성막을 만들면서 법궤를 제작하고 그곳에 십계명 두 돌판을 두었다고 보는 것이 더 합리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후 말씀은 아론과 그의 후계자 엘르아살, 그리고 레위 지파에 대한 기록입니다. 이 부분 역시 특이한 부분입니다. 보시면 6-9절이 괄호 안에 들어가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후대 편집자가 삽입한 구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갑자기 맥락을 끊고 끼어든 일탈구절(digression)이라는 점과 이스라엘에 대한 인칭이 1, 2인칭에서 갑자기 3인칭으로 바뀌는 것이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해줍니다.  

10-11절은 다시 모세의 과거 회상 이야기로 돌아와 하나님이 반역한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고 여전히 그들의 조상들과의 언약을 성실하게 수행하시며, 다시 가나안 정복을 명령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2-22절의 본문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을 눈 앞에 둔 현재로 돌아옵니다. 모세는 여기서부터는 출애굽 2세대가 가나안 땅을 정복한다는 전제하에 권면을 시작합니다.1 오늘 본문은 시적인 감미로움, 주제의 포괄성, 도전적인 메시지 등이 다분하다 하여 구약에서 매우 풍요로운 본문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래서 Brueggemann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신명기에서 가장 강력하면서도 아름답고 명확하게

언약신학을 요약해 놓은 텍스트를 꼽으라면 아마도 이 본문일 것이다.

모세는 수사학적인 질문을 합니다. 히브리어 성경은 12절을 “이제/자!”וְעַתָּה֙로 시작합니다. 한글번역 성경에서는 유일하게 공동번역2 성경만이 “이제, 너 이스라엘아!”로 제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자문자답합니다.  

자! 이스라엘아 하나님이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12a)

먼저는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12b절)해야 합니다(12-16절).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기뻐하고 사랑하시어 만민 중에 택하셨습니다. 사랑에는 사랑입니다. 이스라엘 역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육체의 할례만 하는 표면적인 유대인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아브라함처럼 할례는 마음에 행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처럼 독생자를 바치기까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그렇게 사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영적인 정체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사랑을 방해하는 죄악을 베어버리는 결단입니다. 

그 다음은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13b절)야 합니다(17-20절).

하나님은 외모/뇌물 등 외적인 요소에 흔들리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3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떡과 옷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만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를 지켜야 할까요? 아주 심플합니다. 

첫 번째로 왕이신 하나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명령입니다. 그냥 해야 하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내 자신이 행복(13절)하기 위해서 입니다.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창조주에 의해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라는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 받았다는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

인간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4 현대인들이 가장 추구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행복”입니다. 그러면 인간은 언제 행복할까요? 역사는 우리에게 인간의 행복이 결코 인간들에게서 나올 수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해답을 알려줍니다.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보다 우리를 훨씬 잘 아시는 하나님! 창조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복의 길을 알려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원하는 것은 자녀들의 행복입니다.  사랑하는 아버지의 소원대로 오늘도 우리 모두 행복한 하루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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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래서 McConville 은 이 섹션(10:12-11:32)을 전적으로 미래지향적(forward-looking) 텍스트라고 합니다. 

 2 공동번역성서(共同翻譯聖書)는 대한민국의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에큐메니컬 운동의 일환으로 공동으로 구성한 성서공동번역위원회 

    가 1977 년 부활절에 편찬한 한국어 성경입니다. 현재는 대한성공회와 한국 정교회만이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3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삼상 16:7b)

 4 행복추구권(幸福追求權)은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 중 하나로 안락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 고통이 

    없는 상태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실현하는 권리로 정의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헌법 제 10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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