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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3 새벽묵상 - 목이 곧은 백성 (신9:1-8)



언젠가 한국의 교육방송(EBS)에서 정직성에 대해서 실험을 한 영상을 본 일이 있습니다. 실험 내용은 

이렇습니다. 10 명 정도의 대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를 부탁하며 보수가 얼마라고 알려줍니다. 그리고 나서 일을 마치고 정산하면서 원래 약속했던 보수보다 많은 액수의 보수를 줄 때 학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몰래 영상으로 촬영을 한 것입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에 모든 학생들에게 정직하냐고 질문을 합니다.  

그랬더니 모든 학생이 자신은 정직하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원래 약속된 액수보다 많은 보수를 

받았을 때 거의 대부분의 학생은 움찔하면서 잠시 고민을 하다가 그냥 입을 꾹~ 닫았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여학생 한 명만이 원래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다고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여학생에게 인터뷰를 했습니다. 왜, 솔직하게 말을 했냐고,  

그랬더니 그 여학생은 웃으면서 “내 입이 방정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덕성에 의해서 솔직히 말하기는 했지만, 내심 더 많은 보수가 욕심 났던 것도 사실이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여학생에게 지금 기분이 어때요? 질문하자,  

그 여학생은 환하게 웃으며 “너무 행복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9 명의 대학생들처럼) 우리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살아갑니다.  

물론 도덕적으로 사회적으로 분명히 괜찮으신 분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괜찮다”라는 기준을 

아무도 모를 때, 보는 사람이 없을 때, 양심에, 더 나아가 하나님이 보시기에로 기준을 바꾼다면 어떨까요?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곧 정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약 40 년 전 그들의 조상들이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말하던 그 거인 족속과 그 큰 성읍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그때 이스라엘이 심중에 이르기를, 즉 스스로 착각하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4 절) 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주의를 줍니다. 

이스라엘의 승리=이스라엘의 의로움 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로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의 악함으로 말미암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 5 절)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얼마든지 이스라엘이 잘못하면 다른 지팡이를 사용하여 혼내시는 분입니다. 1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는 사람이나 민족이 그 사실을 망각하면 그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헤렘 전쟁이 참혹하지만 철저하게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 심판의 대행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언약의 신실하신 하나님 때문입니다 (5b 절)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언약하신 하나님은 신실하게 그 언약을 지키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의지대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승리는 가나안 족속의 악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합니다. 

우리의 승리의 공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승리=원수들의 죄악+하나님의 신실하심

모세는 혹시라도 착각할 출애굽 2 세대들에게 자신들의 실체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말해줍니다.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 (6b 절)

이곳에 이르기까지 늘 여호와를 거역하였으되 (7b 절)

고집이 세고 교만한 것을 의미 하는 말입니다. 특별히 본문에서는 도덕적인 자기 의(義)를 의미합니다. 

“난 저 가나안 쓰레기들에 비하면 괜찮은 사람이지!” 라는 도덕적, 윤리적, 신앙적 교만입니다. 

모세가 염려했던 이들의 안 좋은 습관은 예수님 시대에 절정을 이룹니다. 바로 유대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입니다. 어디 그들뿐 입니까? 21 세기에도 여전히 교회 안에 그러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혹시 목사인 제가 그런 사람 중에 하나는 아닐까요?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롬 3:10-12)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렘 17:9)

선지자는 우리 자신조차 우리의 부패한 마음에 속는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우리의 실체를 꿰뚫어 보십니다. 이러한 자신의 실체를 모르니 늘 자신이 옳다 생각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합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오던 날부터 이곳에 이르기까지”라고 말합니다. 

모세는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의 부끄러운 치부를 말합니다. 호렙산에서 금송아지를 만들고 하나님께 

반역했던 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명령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살 수 있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의 실체가 어떠한지 정확히 알고 기억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습니다. 

나에게 철저하게 절망하면 할수록 오히려 예수님 십자가의 소망은 더욱 커집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없이는 늘 하나님을 거역할 수 밖에 없는 존재! 

그러니 오늘도 십자가 밑으로 나아갑니다.  

십자가 붙듦으로 진정한 의로움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그 때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마음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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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B.C.722 앗수르를 사용하여 북이스라엘을 심판하셨고, B.C.586 바벨론을 사용하여 남유다를 심판하십니다.  

   여호와의 맹렬한 불은 내 편, 네 편을 가리지 않고 소멸하는 불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붙잡는 자가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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