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믿고 나서 항상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예수님 직접 만나 봤으면 좋겠다! 직접 하나님 음성을 들으면 좋겠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일반적으로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직접 보고 싶어하는 마음에 대한 신학적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마음이 하나님 존재에 대한 의심이나 타인에게 과시하기 위한 의도가 아닌 진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출발한 마음이라면 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죄를 가진 인간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만으로도 극한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러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전체에게 불타는 호렙산에서 구름과 어둠 속에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충분히 듣고 느꼈으니, 앞으로 모세가 중재자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모세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그대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절대 거룩이시며 온 우주의 빛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죄인인 인간이 직접
뵌다면 인간의 존재는 사라질 수 밖에 없는 것이 맞습니다. 마치 핵폭탄의 열과 빛에 모든 것들이
사라지듯 말입니다.
하나님 역시 그들의 제안을 좋게 여깁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말씀 하시는 분, 모세는 대언자, 그리고 이스라엘은 청중의 관계가 형성 됩니다. 물론 오늘날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마치 아담 때처럼 성도 개인이 하나님 앞에 나가 교제할 수 있는 은혜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공적인 예배, 교육, 훈련에서는 역할이라는 면에서 모세의 시대와 동일한
말씀하시는 하나님 – 대언자 – 청중 이라는 시스템이 가동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십계명을 듣던 중에 몇 번째 계명부터 모세에게 전달해서 듣게 되었을까요?
물론 정확히 모를 일입니다만, 학자들은 제 3 계명인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가 아닐까 추측합니다. 어제 본문을 보면 6-10 절까지는 하나님이 1 인칭 “나”(6, 7, 9, 10 절)으로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11 절부터는 “네 하나님 여호와” 3 인칭으로 바뀝니다. 그것은 모세가 듣고 전했다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어쨌든 모세가 전한 십계명은 시스템 안에서 이스라엘이 직접 들은 것과 다름 없습니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말씀 하시는 하나님 – 대언자 – 청중 각자 고유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각자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말씀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언제나 인간과 교제 하시며 말씀 하시는 분입니다. 어느 시대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성경”입니다.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히 1:1-2a)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말씀에 대한 해석입니다.
하나님이 말씀 하는 바 그 의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만인제사장 시대에 가장 중요한
사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 하십니다.
대언자의 역할
하나님은 모세에게 너는 여기 내 곁에 서 있으라(31a 절) 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대언자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역할입니다. 하나님 곁에 서는 것, 그리고 그 분의 말씀을 먼저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대언자가 가장 집중해야 할 일입니다. 오늘날로 치자면 설교자는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 하고 싶은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먼저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들었다면,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일체의 가감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들은 그대로 전하는 것이 대언자의 역할 입니다. 기쁜 소식이든 책망의 소식이든 들은 대로 전하는 것이야 말로 대언자의 가장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청중들이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 까지가 대언자의 책임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것을 행하게 하라(31b 절)고 명령하십니다.
청중의 역할
이스라엘은 대언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32 절)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잘못된 반응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전해준대로 “아멘”으로 받아야 합니다. 또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33 절) 고 하십니다.
100% 말씀에 순종하도록 해야 합니다. 순종은 제사보다 나은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결과는 너희가 살 것이요 복이 너희에게 있을 것이며 너희가 차지한 땅에서 너희 날이 길리라(33 절) 입니다. 할렐루야! 참 쉽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순종”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왜일까요? 인간의 연약함, 죄의 노예 근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성령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말씀)을 통한 순종을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괴롭히려 그러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29 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다만 그들이 항상 이 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 (신 5:29)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 그 진심을 받읍시다. 순종 합시다!
오늘도 그래서 복된 하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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