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비유로 말씀하신 것임을 밝힙니다. 여기서 ‘비유’(Parable)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파라볼레’로 ‘나란히 놓음’이라는 의미로 비슷한 것을 옆에 놓고 비교하여 알게 하는 것에서 비롯된 단어입니다. 소위 풍유적(allegorical)인 비유로서 풍자하여 교훈을 주시고자 한 이야기입니다.
먼저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그리고 그것을 만든 한 사람, 곧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상징합니다.
소작인은 바로 그 포도원의 관리 임무를 부여 받은 유대 지도자들, 종들을 예언자(선지자), 그리고
상속자인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상징합니다.
스토리는 간단합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소작인들에게 맡기고 타국에 가서, 얼마 후에 그 소출
일부분을 받으려고 종(선지자)들을 보내지만 소작인들이 종들을 때리고 죽입니다. 그러자 주인은 내
아들은 존대할 것을 기대하며 보내지만, 오히려 소작인들은 상속자임을 알고 죽여 포도원을 밖에
버립니다. 결국 주인이 와서 그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이 짧은 풍유적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셨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 3 가지입니다.
먼저는 종말의 때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2 절 ‘때가 이르매’는 헬라어로 ‘토 카이로’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정해진 때요, 쌍방간에 인지하고 있는 때입니다. 12 절에 ‘와서’라는 단어가 주인이 심판자로 오는 종말의 때가 있음을 상기 시킵니다.
실제로 A.D.70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다가 포도원인 예루살렘은 완전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
이후 거의 2000 년 가까운 시간을 그들은 국가가 아닌 난민으로 살아갔다는 것을 얼마 전 새벽묵상에서 말씀 드렸습니다.
두 번째로 고난과 박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종, 자녀들의 삶에는 반드시 고난과 박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결국 사탄의 하수인들과 하나님의 자녀들과의 거룩한 전쟁이 이 세상의 삶입니다.
사탄의 공격은 심지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기까지 멈추지 않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임이니라”(마 5:15).
세 번째로 우리에게는 주인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문제는 마치 자신들이 주인인양 행세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모든 기득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아들까지 십자가에 죽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잊지 말아야 할 주인의 존재를 잊은 것이야말로 그들의 가장 큰 불행이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결국 그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비극은 예수님의 친절한 이 비유가 자신들의 이야기임을 알고서도 제대로 된 반응
(12 절) 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무릎을 꿇고 회개했다면 그들에게 생명이 주어졌을 텐데,
오히려 그들은 끝까지 주인의 아들을 죽여 포도원 밖에 던져버립니다.
이제 이 말씀을 우리에게로 가져와 봅시다!
혹시 우리도 종말의 때가 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요? 마치 이 땅에서 삶이 다인 것처럼
물질과 성공에 노예가 되어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달려가고 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봅니다.
COVID-19 사태가 우리에게 준 한가지 유익은 “아! 이대로 끝날 수도 있겠구나.”하는 종말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쳐 준 것입니다. 반드시 때가 올 것입니다. 준비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는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피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기독교의 중흥은 가장 박해가 심했던 시기에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기독교의 문제는 결코 희생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제자의 길이 아닙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14)
고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의인은 고난이 많지만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시 34:19). 고난의 끝은 생명입니다!
혹시 내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청지기1일 뿐입니다.”의 저자인 후안 까를로스 오르티즈 목사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한 핵심을 그 책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악한 종과 선한 종의 차이는 주인의 존재를 잊느냐 잊지 않느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온 천지를 맡기시며 누리고 즐기라고 주셨습니다.
우리가 가진 물질, 건강, 시간, 재능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신 것입니다. 마음껏 누리고 즐깁시다!
그러나 잊지 맙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나의 것은 아닙니다. 주인이 있습니다.
세계는 고난의 때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선배들이 보낸 고난의 때와는 비교도 안 되는 편안한 고난의 때를 보내고 있지만 말입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반드시 개인의 종말이든, 온 세계의 종말이든 반드시 마지막 때가 온 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맡겨주신 포도원을 어떻게 가꾸고, 어떻게 사용하시겠습니까?
내 것이 아닙니다. 명심합시다!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청지기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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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지기를 뜻하는 헬라어 Οί κονόμος(오이코노모스)는 영어로는 steward 이며, 관리인, 집사, 지배인 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신약성경에만 약 10 회 정도 사용되었습니다. (마 20:8, 눅 8:3, 12:42, 16:1,2,3,8, 갈 4:2, 딤전 4:6, 딛 1:7, 벧전 4:10) 청지기 ‘오이코노모스’는 집을 뜻하는 Οί κοσ (오이코스) 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또한 이 단어에서 경영을 뜻하는 오이코노미아 Οί κονομία (economy)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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