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부터 고난주간 Holy week 의 시작입니다. 월요일은 ‘권위의 날’이라는 별명이 있습니다.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고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가 말라버린 사건이 있었던 날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은 12 절부터 보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어제 주일 설교에 말씀 드렸던 바로 샌드위치 기법이 여기서도 사용됩니다. 성전을 청결하게 하시기 전후로 무화과 나무에 대한 저주 하심과 실제로 무화과 나무가 마른 사건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기도에 대한 교훈으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무화과 나무 저주와 성전 청결 사건, 그리고 기도의 문제는 하나로 연결된 교훈입니다.
먼저 우리는 평소와 다른 예수님의 모습에 당황스러울 수 있습니다. 소위 파괴적 기적(Miracle of
destruction)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시장하시어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 다가가셨지만 열매를
구할 수 없었습니다. 열매가 없는 것은 아직 열매 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열매가
없다는 이유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고, 다음날 보니 무화과 나무가 말라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실 교훈을 위하여 무화과 나무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교훈 하시기 위해서 무화과
나무를 그렇게 사용해도 되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교훈을 위해서는 무화과
나무를 얼마든지 그렇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사람이 나무를 무분별하게 벌목해서는 안되겠지만 추운 겨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나무 한 그루를 베어서 보온과 음식 준비용 땔감으로 사용한다면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무화과 나무를 교육 자료로 사용하시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엇을 교훈하시기 위해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것일까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유대인들의 성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원래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기도하고 응답 받는 열매를 맺는 곳이 성전입니다.
그런데 이미 유대인들의 기도와 성전은 형식적일 뿐 생명을 잃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성전은 죄를 지은 자들이 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죄사함을 받아야 하는 곳인데, 오히려 자신들의
장사의 수단으로 사용합니다. 죄가 가득하지만 회개하지도, 회개할 생각도 없습니다.
그래서 강도의 소굴입니다. 거룩해야 할 성전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하고 와도 마음에 전혀 찔림이 없는 편안한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나는 열매 맺는 무화과 나무인가? 나는 성전으로서 제 기능을 감당하는 자인가?
여기서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은 삶에서 맺는 성령의 열매를 말하기도 하지만, 좁게는 기도하고 응답 받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앞의 두 질문을 바꿔 말하면 성전인 나는 기도하는가? 기도한다면 열매, 곧 기도의 응답을 받는가?라 할 수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말라버린 무화과 나무를 보고 놀라서 예수님께 그 사실을 보고하는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응답 받는
기도의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첫 번째로 믿고 의심하지 않는 기도입니다 (23-24 절)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믿음 없는 기도의 위험성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약 1:6-7)
두 번째로 회개하고 용서하는 기도입니다 (25 절)
우리는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고 싶어도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손에 죄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사 1:15)
마지막으로 욕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는 기도의 핵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해도 얻지 못하는 것은 욕심으로 구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 4:2b-3)
기도하고서 이루어질까? 안 이루어질까? 고민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이 기도는 하나님이 기뻐하는 기도인가? 아닌가? 고민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입니다.
일단 방석을 바닥에 놓으십시오, 그리고 그 위에 두 무릎을 꿇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은 후 감사의 말을 올리시고, 자신의 죄를 입술로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이제 준비는 다 끝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타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간구의 제목들을 겸손히, 그리고 믿음으로 아룁시다.
들어 주실 때까지 기도하면 됩니다.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만일 주님의 뜻에 어긋난 기도라면 어떻게 하나요? 걱정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가 오랜 시간 기도하는 동안 지혜의 영으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성전인 나의 삶에 기도의 소리가 울려 퍼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한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로 이루어지는 특권을 누리시기 시작하십시오!
명심하십시오! 응답 받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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