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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8 새벽묵상 - 선악의 기준이신 하나님 (신2:26-37)



2004 년 12 월 26 일은 전 세계에 “크리스마스 다음 날1의 악몽”이 있었던 날입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서부 해안의 40 km 지점에서 초대형 해저 지진이 발생, 쓰나미에 의해 30 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5 만 명이 실종, 169 만 명의 난민이 발생한 최악의 쓰나미 사건이 벌어진 날입니다.

수많은 희생자 중에는 노인과 여성, 그리고 부모님을 따라 휴가를 즐기러 온 어린아이까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지역의 ‘헤럴드’지에 다음과 같은 논평이 실렸습니다.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그는 스스로를 창피하게 생각해야 한다.

무지막지한 아시아의 쓰나미, 죽음, 파괴, 그로 인한 거대한 불행 앞에서는

아무리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도 믿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간생략)

내 생각처럼 하나님이 없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있다면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할 테니.

내가 볼 때 그는 죄만큼이나 악하다. 그와 조금도 엮이고 싶지 않다.



수많은 무신론자들이 이러한 사건 앞에서 하나님이 존재에 대한 회의를 감추지 않습니다.

그들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오늘 본문과 같은 경우에도 많은 불신자들에게, 심지어 신자들에게까지 하나님에 대해서 의구심을 갖게 하는 내용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그의 모든 성읍을 점령하고

그의 각 성읍을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34 절)



이러한 전쟁을 소위 ‘헤렘전쟁’이라 하는데, 히브리어 ‘헤렘’은 명사일 경우 멸하기로 작정된 물건, 저주 받은 물건의 의미이고, 동사 ’하람’일 경우는 완전히 멸하다, 저주 아래 두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아모리 사람 헤스본 왕 시혼과 그 성읍에 ‘헤렘’을 명령하셨고, 모세와 이스라엘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헤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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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렘전쟁’을 명령하는 하나님은 결코 ‘선하신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바로 불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마치 쓰나미의 고통을 바라보는 기자의 마음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많은 무신론자들은 에피쿠로스의 악의 문제에 대한 논증을 무기로 삼아 신이 없음을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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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렘’이나 자연재해의 문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악의 문제에 대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입니다.

결코 짧고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핵심적인 것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선과 악의 기준입니다.

우리의 선과 악의 개념이 어디서 왔을까요? 우리의 도덕, 윤리의 개념의 출발이 어디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성품 안에 넣어두신 하나님의 형상에서 그것들이 출발합니다.

그러나 인간 안에 존재하는 선과 악의 개념은 시대나 상황 등에 따라 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살인은 악한 것입니다. 하지만 강도가 칼을 들고 어린 아이를 죽이려 할 때, 경찰이 총으로

강도를 살인한다면 그 살인은 악한 것일까요?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선과 악의 기준이 얼마나 상대적이고 유동적인 것인가!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대 선 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는 모든 것은 다 “선”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하는 일을 다 이해할 수 있건 없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두 번째로 삶과 죽음의 때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그리고 그 때를 각 개인이 정할 수 없습니다.

전적으로 수동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삶과 죽음의 때입니다.

그리고 죽는다는 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입증하는 실제적 현상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죽음, 악은 하나님의 문제가 아닌 인간의 타락의 결과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땅까지도 저주를 받게 한 무서운 죄입니다.

자연재해를 통한 비극을 우리는 영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죄의 문제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슬퍼해야 하는 것은 어린 나이에 죽은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하나님을 모르고 죽어가는 영혼에 대한 안타까움이어야 합니다. 누구나 언젠가 죽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이 심판의 도구가 되어 ‘헤렘’ 명령을 행하는 이스라엘이 느껴야 하는 감정은 죄에 대한 슬픔입니다. 자신들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것에 대한 감사와 동시에 죄로 인하여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말입니다.

계시가 완성된, 즉 성경이 완성된 지금은 하나님이 ‘헤렘’을 명령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구약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분명한 것은 선과 악의 기준은 우리의 경험,

도덕, 철학, 사고적 체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선악의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칼빈은 다음과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라는 곳까지 가고 멈추라는 곳에서 멈추는 것이 참신자의 도리이다4



오늘 하루도 얄팍한 나의 생각과 철학, 경험에 의한 선악을 구분하고 사람들과 심지어 하나님까지

정죄하며 살아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닌, 선과 악의 기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진짜

착한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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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리스마스 다음날 벌어진 사건이라 영미권에선 2004 Boxing Day Tsunami 라고 한다.

2 사무엘상 15:1-35 참조

3 신은 악을 없애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한 것이 아니다.

악을 없앨 능력은 있지만 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의를 갖고 있는 것이다.

악을 없앨 능력도 있고 없애려 하기도 하는가? 그렇다면 왜 악이 존재하는가?

악을 없앨 능력도 없고 없애려 하지도 않는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에피쿠로스. De Ira Dei, 13, 20-21.)

4 그래서 말씀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이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제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깨달아야 온전한 순종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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